인생이 가벼웠으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어떤 이는.
조금만 더 인생이 가볍다면 살 맛 날 텐데 싶다.
모든 책임에서, 모든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나 훌훌 자유롭게 살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인생이 좀 무거웠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가끔 있다. 어떤 이는 인생이 진공 상태처럼 너무 단조롭고 가벼워서 좀 무거운 닻이 자신을 땅에, 인생에 발붙여 주길 바라기도 한다. 자신을 인생에 딱 붙들어 주고 시간을 잊게 해 주는 그 무언가가 있었으면 한다.
쳇바퀴 같은 직장이어도 좋고, 티격태격하는 가족이어도 좋고, 불러 내주는 친구도 좋고,
그중에 가장 큰 닻은 부모님, 아이들, 친구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겠지.
어쩌면 창문 너머 들리는 사람들 떠드는 목소리. 그래 여기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 나도 사는 곳이지.
어쩌면 윗 집에서 싸우는 소리. 그래 여기 사람 사는 곳이지, 나도 살고 있지.
어쩌면 맛있는 엄마의 밥 짓는 소리, 압력 밥솥의 압력이 칙 울리며 빠져나가고 '밥 먹어!' 하는 엄마의 목소리, 날 보고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이 가끔 하느님 같다.
1인 가구가 너무나 많이 늘어났다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 각자 인생에 묵직한 닻을 내리고 든든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진공상태를 겪으며 인생의 가벼움에 천장으로 몸이 부웅 떠 다니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살아야 할 의미와 살게 해 줄 닻을 찾아 잡으려 애쓰고 있을까.
들판의 수없이 많은 풀들을 본다.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풀들.
그 풀들 하나하나에 생명이 있는데, 의미는 있는 걸까.
지구상에 80억 인구가 있다. 그 많은 사람들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가 주어진 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이미 주어진 어떤 인생의 의미가 있는 걸까.
없다고 본다.
하나의 결정적 의미는 태어났다는 거. 생명 그 자체다.
살아갈 시간이 주어졌다는 거!
수만 시간을 가지고, 살아갈 몸과 삶에 필요한 다양한 품성과 요소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거.
놀라운 일이다.
그 기적 같은 선물이 너무 무거워 삶을 끝내기도 하고, 너무 참을 수 없이 가벼워 삶을 끝내기도 한다.
같이 서로의 닻이 되어 주며 인생의 궤도가 생긴다. 삶의 건물이 생긴다. 미세하고도 거대한 삶의 의미들이 얽히고설켜 의미를 생각하지 않아도, 삶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매일매일 빙글빙글 잘 돌아가는 궤도 위에서 살아간다. 궤도에 올라만 있어도 살아지고 시간을 잊는다. 궤도들이 끊어질 때도, 다시 세워질 때도 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 있을 때, 함께 말을 나눌 대상이 있을 때, 함께 뭔가를 먹고 놀고 깔깔 댈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함께 감탄하고 마음을 나누는 대상이 있을 때, 시간을 잊었으나 채워가며 행복해진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길 기도라는 이름으로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