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Part 1> 리뷰

복수가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

by 당첨자

※약 스포일러 포함


김은숙 작가의 장르물

송혜교, 이도현 주연의 <더 글로리 Part 1>은 총 8화로 구성된 넷플릭스 시리즈이다. 채널 방송 미니시리즈를 주로 집필하던 김은숙 작가의 첫 OTT 오리지널 시리즈라 그런지, 기존 호흡에 맞춰 총 16화로 기획된 것이 인상적이다. 김은숙 작가라 하면 로맨스 장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단 로맨스라는 판을 먼저 깔아놓고 그 위에 판타지(시크릿 가든, 도깨비, 더 킹:영원의 군주)나 시대물(미스터 선샤인) 장르를 펼치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일반 서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머나먼 재벌 이야기(상속자들)도 판타지라면 판타지겠다.

나는 더 글로리 정주행을 시작하면서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가난하고 일상적인, 때로는 피폐한 서민의 삶을 이 작가님을 통해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있다 해도 재벌의 눈에 들어 이미 신분 상승 티켓을 쥔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동안 김 작가님의 작품을 거부감 없이 제법 잘 봤다. <시크릿 가든>과 <도깨비>는 본방으로 챙겨봤고, <더 킹: 영원의 군주>는 과도한 PPL과 억지스러운 전개에 중도 하차했지만, 어쨌든 초반부터 뒷걸음질 친 적은 없다. 그런데 그게 다 비상(非常)한 배경 위에 뛰어다니는 캐릭터라 용인하고 넘어가는 사안이 많았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지나친 폭력 연출

초현실적인 능력이나 돈이 없는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은 오로지 복수심만으로 이 시리즈를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연출진은 그 복수심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1~2화에 일방적인 폭력 장면을 때려 붓는다. 방송 심의의 제한도 덜하고, 19세 시리즈이고, 요즘 유행하는 가학적 폭력 연출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나는 18세 문동은(정지소 분)에게 모두가 하나같이 악의만 가지고 달려드는 장면에 이입이 되지 않았다. 잔인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잔인한 걸 잘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서 발달 중인 청소년기에는 물리적 폭력보다 심리적 폭력이 더 큰 파도이지 않나. 냅다 때리기만 하니까 그들 간의 관계도, 정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 나이대에는 또래 친구가 세상의 전부이고, 부모님과 선생님이 유일한 어른이다. 그들과의 연결고리를 서서히 옥죄고 단절하는 식으로만 그려줘도 될 것 같은데. 시계까지 풀어가면서 애를 때린다. 고기 익히는 소리를 열심히 활용한다. 그게 문동은을 악에 받치게 만드는 빌드업으로 과연 충분한가? 나는 여기서 일단 작가님이 학교폭력과 장르물이라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래 잘하시는 걸 밀어붙여도 좋지 않았을까... 김치찌개 맛집에서 마카롱이 나온 셈이었다. 판타지 능력과 돈을 제하고 남은 그 '동력'에 연료를 억지로 채우고 있는 게 보여서 2화까지는 하차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2화 엔딩부터 전개가 급물살을 탄다. 이 이후부터는 자의적으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궁금해서라도 8화까지 달리게 된다.


일단 대사 '쪼'부터 견뎌야 한다

김은숙 작가는 대사에 지문(指紋)이 있는 수준이다. 재벌이나 도깨비, 군주가 그런 문어체 대사를 치면 판타지가 가중되기라도 하는데. '난 아주 말캉하고 뽀얀 네가 제일 아끼는 고데기를 들 거야.', '존엄이라곤 없는 이미 더없이 폐허죠. 그러니까 돌아가요. 난 분노와 악에 더 성실하고 싶거든요.' 이런 대사를 월급쟁이 초등학교 교사인 주인공이 직접 발화한다. 시청자는 이런 대사 폭격에 꼼짝없이 당해야 한다. 이미 김은숙의 대사쪼를 좋아하는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겠지만, 다른 콘텐츠를 보던 사람은 흠칫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3화 정도까지 참고 보면 이 대사쪼에도 익숙해지니까 조금만 견뎌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여성과 여성이 맞붙을 때 터지는 대사의 힘

<더 글로리>는 전작들에 비해 로맨스의 비중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 대신 여성과 여성 간의 연대, 위협, 견제를 대사에 힘을 실어 표현하고 있다. 연대할 땐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협박받을 땐 '대가리에 국영수 좀 채웠다고 아주 씨발년이 됐네?'같은 욕을 하기도 한다. 대사쪼에 면역이 생긴 뒤에는 오히려 이런 다채로운 어휘가 속 시원하게 다가왔다. 예전 같았으면 로맨스에서나 터졌을 명대사가 여성 간의 전투 속에서 살벌하게 튀어나오니 볼만했다. 그러니 그걸로도 이 시리즈를 볼 이유는 웬만큼 생긴 게 아니겠나.


사적 복수는 통쾌한 것이 아니라

요즘 OTT 오리지널 시리즈는 폭력이 난무하며 잔인하고 징그럽다. 성적 수위든 폭력 수위든 입을 너머 코까지 닿아 찰랑거린다. 피가 터지지 않으면, 그걸 카메라가 사실적으로 스토킹 하지 않으면 흥행하지 않는다는 듯 유행 중이다. 사법 체계의 처리가 못마땅하니 사적 복수에 통쾌감을 느끼는 정서가 만연하다. 이런 '참교육' 정서가 콘텐츠를 뒤덮고, 우리 머릿속까지 장악하게 되면, 사소한 대화나 평범한 관계에도 위태로운 순간이 오기 마련일 것이다.

<더 글로리>는 사적 복수를 행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데 뒤엉켜서 파멸 중이다. 통쾌한 것이 아니라 함께 지옥 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건 여타 콘텐츠와는 분명 다른 방향이다. 동은은 범법을 공모하는 현남(염혜란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거짓말했어요. 찌개를 끓이는 그런 저녁은 오지 않아요. 이모님은 선아를 잃게 되실 거예요. 하지만 선아는 안전하겠죠.


자신을 다 망가뜨려가면서까지 복수가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Part 2는 통쾌한 복수가 아니라, 동은과 연진(임지연 분)이 어떻게 함께 죽어가는지 지켜보는 회차일 거라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는데 최선을 다한 사람이 아름답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리는 없다. 작가님은 그 메시지를 위해 이 작품을 집필한 것일 테다. 비뚤어진 정서가 만연한 콘텐츠 홍수 속에서 이 작품이 그 메시지라도 멀리 남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파트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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