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

싸이, 「챔피언」

by 전지적 아아

모두의 축제

서로 편가르지 않는 것이 숙제

소리 못 지르는 사람 오늘 술래

다같이 빙글 빙글 강강 수월래

강강 수월래

함성이 터져 메아리 퍼져

파도 타고 모두에게 퍼져

커져 아름다운 젊은이

갈라져 있던 땅덩어리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사나인데

가슴 쫙 펴고 화끈하게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하면서

이것 보소 남녀 노소

좌우로 흔들어

(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네가 (챔피언) 네가

(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전경과 학생 서로 대립했었지만

나인 같아 고로 열광하고 싶은

마음 같아

오늘 부로 힘을 모아 합세

하나로 합체

모두 힘을 길러 젊음을 질러

자유로운 외침이

저기 높은 하늘을 찔러

소리 질러 우리는 제도권 killer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사람인데

똑같이 모두 어깨 동무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하면서

파벌 없이 성별 없이

앞뒤로 흔들어

(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네가 (챔피언) 네가

(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질러 볼까 더 크게

뛰어 올라 더 높게

내일 걱정은 낼 모레

오늘은 미쳐 보게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한방인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하면서

주먹을 쫙 피고 하늘로

아래 위로흔들어

(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네가 (챔피언) 네가

(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2002년. 온 나라가 엄청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을 때 이 노래가 나왔다. 정말 모든 국민들이 흥을 즐기던 시절. 정말 가사 그대로 즐길 줄 아는 모든 국민이 챔피언이었던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극단적으로 낯을 가리는 성격에 거리 응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소리 지르고, 얼싸안고 그랬을 정도였으니까. 거의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그 분위기를 즐겼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노랫말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맨 앞에 나오는 ‘진정’이라는 말인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흥을 즐기며 산다. 그렇지만 ‘진정’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살면서 ‘진정’ 즐기면서 했던 게 무엇일까?

인생을 가장 즐겼던 시기는 대학교 3, 4학년 때인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원 없이, 모든 것을,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제약 없이 즐기고 살았다.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 해봤다. 3학년 때 논문발표대회 준비하면서 그때 가장 재미를 붙였던 문법 공부 많이 했고, 4학년 때는 임용 공부 많이 해서 다행히 합격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정말 그 2년은 공부가 재미있었다. 매일 공부가 재미있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대체로 재미있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물론 추억 보정일 수 있다.)

연애도 지금과 다르게 꽤 했던 것 같다.(이건 추억 보정이 맞을 거다.) 특히 상대방과 갈등 상황을 여유롭게 잘 풀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소위 말하는 ‘선배’ 아우라에 기대어(그렇다. 후배들과의 연애였다.) 내가 권위적으로 대했을 수도 있지만, 나름 지금보다 인간관계에 여유를 가지고 즐겼던 것 같다.

그럼 ‘진정’ 즐긴 걸까? 아닌 것 같다. 왜? 즐거웠다면서? 아마 이 모든 즐거움은 한 가지를 빼먹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해 즐겁게 지낸 건가?’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정언명령’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가볍게 이야기하면 수단으로써 대하지 말고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대학교 3, 4학년은 즐기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언가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누군가에게 잘 난 척하고, 있어 보이기 위해, 남들이 하니까 나도 덩달아하는 등의 대부분의 행동이 수단이었던 것이다. 즉, ‘진정’ 즐긴다는 것은 칸트식으로 이야기하면 오직 즐기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즐기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행위 앞에 ‘진정’이라는 말이 붙으면 다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너무 어렵다. 진정 무언가를 한다는 것. 인간이 살면서 이렇게 살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칸트 같은 대철학자가 저런 말을 남기고 위인 또는 유명인이 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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