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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Nov 05. 2022

10.29, 이사 전날

*이태원 참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 전날이었다.

버릴 물건을 버리고 귀중품을 챙기고 가구 배치를 고민하고

이사를 아침 일찍 해야 해서 일찍 자야 했었다.


그런데 자기 전 sns 영상에서 많은 사람이 거리 바닥에 누워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한테 붙어서 가슴압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50명이 사망했다는 문구가 있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안 믿었다

그런데 모든 뉴스가 그 얘기를 하고 있었고 참사 현장 영상이 계속 돌아다녔다


실제 상황이란 걸 인지하고서는 사촌 언니 생각이 났다

사촌 언니는 음악관련 일을 해서 거의 매주 주말 밤 이태원에서 일한다


엄마가 이모와 언니에게 계속 전화하고 카톡하고

둘 다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미친 듯이 인스타를 뒤져서 언니가 그날 일하는 곳이 이태원이 아니라 홍대 근처인 것을 알아냈다

결국 몇 분 안 지나서 언니에게서 홍대에서 일하고 있고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몇 분간 패닉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언니는 할로윈마다 이태원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서 일부러 홍대에서 일하는 스케줄을 잡았다고 한다

언니 친구들은 피해자가 없었지만 친구의 친구가 참변을 당해서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날 밤에 너무 힘들어서 정신없이 다른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관련 없는 글을 썼다

머리 한쪽 편엔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집 앞으로 지나가는 구급차 소리에 바보 같은 믿음도 사라졌다 (난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다)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고 일어나 보니 사망자가 150명이었다

업데이트가 되고 있는 뉴스였어서 어떤 뉴스는 사망자가 50명이라 하고 어떤 뉴스는 150명 이래서 뭐가 맞는지 몰랐었다

아침이 되자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왔고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엄마랑 차에서 눈을 붙였다

이사 간 집에서 좀 돕다가 도울 것이 없어서 난 밖으로 나가 있겠다고 하고 아파트 단지 아무도 없는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았다


이사 온 집이 엄청 조용한 곳이라 어떤 소리도 안 들렸다

오후 햇살에 산들바람이 얼굴로 불어오는데

150명이 숨 쉬었던 공기가 오는 것 같았다

이젠 그 사람들이 숨을 안 쉰다는 게 이상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도 세상은 조용하고 햇살은 똑같이 따뜻하고 바람은 살랑이며 분다는 게

당연한데


이사 후에 밥을 먹고 배가 불러서 바닥을 걸레로 닦았다

청소를 해주고 가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더러웠다

조용한 집에서 열심히 바닥을 닦았다

화장실도 냄새가 심하길래 물청소를 하고 세면대를 닦았다

땀을 많이 흘려서 샤워도 했다


청소를 다하고 엄마에게 이번 이사는 왜 이렇게 정신적으로 힘들지? 했더니 이태원 때문에 그런 거 아냐? 했다.

아, 맞네



이 조용한 집이 어떻게 해야 따뜻함으로 가득 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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