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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ap Oct 19. 2022

'화'의 품격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의 품격?

'화'란 무엇일까? 인간은 왜 화를 내는 걸까. 반드시 화를 내야만 이기는 것이고, 화를 내면서라도 당장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 몹시 못마땅하고 언짢은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왜 대부분 당연한 것이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울까


처음 한계점을 찍는 것은 어렵지만 한번 찍고 나면 그 이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이제 한계점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얘기할 때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화도 한 번도 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내 본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이다. 늘었으면 늘었지 맛을 본 이상 줄어들기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웬만하면 싸우고 싶지 않아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화를 내본 적이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대답한다. "그럼요." 그럼 모두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당연하죠. 내가 당신에게 화를 냈다면 우린 더 이상 만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정말 화를 냈다고 모든 인연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나에게 '화'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냥 참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면서 싸우는 방법이 아닌 대화를 하고 대화를 하며 끝까지 대화를 하면서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거기에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혼신의 힘을 다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너무 앞서는 것 같으면 잠깐의 텀을 준다.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시간을 두고 문제를 해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화풀이 식의 공격이나 화, 무시로 인해서 화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까 나에겐 화를 낼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백 퍼센트 감정의 빨간 불을 던지면 그 불꽃은 나에게로 와서 차가운 파란색으로 변해버린다.



'화'에도 품격이 있을까?


화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내가 말한 대화를 하고 대화를 하며 대화를 하는 것도 내가 화를 내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큰 소리로 언성을 높이며,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말하는 것만이 화가 아닐 수도 있다. 화를 내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어느 정도의 데시벨 이상이 되어야만 화의 적합하고 이러이러한 단어들을 써야지만 충분하며, 결정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줘야지만 완성이 되는 것이 화라면 나는 실제로 화를 내보지 않은 사람이 맞다. 여기서 '실제로'라는 말을 쓴 이유는 직업상 이러한 화를 내는 연기의 경험은 있기 때문이다. 연기라지만 그냥 그런 척이 아닌 온전히 내 것이 되어야만 진짜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품었을 땐 많이 힘들었다. 마음을 품기가 힘든 것이 아니라 불을 가득 품고 있는 내 마음 때문에 힘들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화'를 웬만하면 품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화를 낸다는 것이 백 퍼센트, 아니 이백 퍼센트 감정을 구토가 나올 만큼 다 쏟아내야지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습관처럼 화를 내면서 또 빠르게 사과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를 낸 이후에 사과를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화를 낼 것인가, 안 낼 것인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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