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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ap Nov 09. 2022

모든 일에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나의 첫 번째 단편 영화 코멘터리

이  영화는 어두운 밤 찻집 창가에 낯선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찻집 안에는 노란 조명 불빛과 감미로운 재즈가 흐르고 있다. 남자는 한참을 창가에 서서 바라보다 찻집 안으로 들어온다. 무엇에 홀린 듯 내부를 하나하나 둘러본다. 푹 눌러쓴 모자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안쪽까지 들어온 남자는 벽장 앞에 우뚝 멈춰 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축 늘어져 있던 그의 손이 느리게 주머니로 향한다. 무언가 꺼내려던 손은 갑작스레 들어온 여자의 문소리에 황급히 들어가고 찻집을 나가려 몸을 돌린 순간 여자가 말을 건넨다. 놀란 건 여자도 마찬가지.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른 여자는 마음을 추스르며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넨다. 여자의 목소리에 발이 묶인 남자는 등을 보인채 가만히 서있다.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남자를 조심히 바라보던 여자는 오늘 찻집에 다도를 배우러 오기로 했던 남자로 착각을 한다. 연락이 없어서 안 오시는 줄 알았다며 안내를 한다. 수상한 남자는 어쩌지 못하고 자리에 앉는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남자와 애써 웃으며 차를 건네는 여자. 남자는 간간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마음을 녹이는 국화차와 불편한 공기, 수상한 남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마주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첫 씬이 지나간다.


Copyright 2020. (Filmondo)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며칠이 지나고 노을이 지는 초저녁. 수상한 남자가 다시 찻집을 찾아온다. 다른 손님의 다도 수업을 하려던 찰나 들어온 남자를 보고 여자가 멈춰 선다. 이번엔 남자가 먼저 꾸벅 인사를 해 보인다.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를 보고 다시 나가려는 남자에게 들어오라며 붙잡는 여자. 결국 두 사람에게 수업을 하게 된다. 수업이 끝나고 먼저 나간 손님과 뒤늦게 일어서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여자가 찻집 명함을 건넨다. 이쪽으로 연락하고 오시면 더 편하실 거예요- 라는 말과 함께. 가만히 명함을 보던 남자는 또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간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지만 사실 여자는 이 남자가 원래 오려던 남자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다음 날 연락 없이 못 가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여자는 모든 게 이해가 갔다. 왜 조금 이상해 보였는지, 왜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했는지. 그리고 왜 조금은 무서웠는지도. 그럼 그 남자는 누구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하다가 이제 안 오겠지 하며 잊어버렸는데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제법 어둡지 않은 초저녁에. 그래서 여자는 어쩌다 그냥 우연히 들렀다가 차 수업이 좋았나 보다고 생각하며 명함을 건넨 것이다.


Copyright 2020. (Filmondo)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그렇게 영화는 햇살 밝은 낮에 정식으로 수업을 요청한 남자와 수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마무리가 된다. 남자는 드디어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다. 밝아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웃으며 맞이하는 여자. 여자는 남자에게 색다른 차를 알려준다. 차를 그저 차로써만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예상 밖의 맛이나 모양으로도 즐길 수 있다며 말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이상할 수 있어도 알고 보면 그만의 특별함과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는 것. 결론적으로 여자의 입을 통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며 끝을 맺는다.


Copyright 2020. (Filmondo)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감독의 말/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일들과 수많은 인연들이 나를 스쳐갑니다. 좋은 일이 오면 안 좋은 일도 오기 마련이고 즐거운 날이 있으면 괴로운 날도 있기 마련이죠. 예상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나 인연들이 마주치고 또 마주쳐 인연으로 자리 잡거나 보자마자 인연임을 느꼈다가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경험하며, 정말 '어쩌다 그냥, 뭐 그냥 그러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들 안에서 과연 나는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며 살고 있을까.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결국 그렇게 갑자기 찾아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당장은 알 수 없는 인생의 수 만 가지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살고 싶습니다.



여자는 처음부터 남자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과 행동은 그가 정말 무슨 짓을 일으킬 것만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여자는 오해하지 않으려 했고 다른 이유로 착각을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분위기를 이끌고 나간다. 그리고 결국 마주 앉아 당신이 여기에 오게 된 이유가 있겠죠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 어렸을 때는 이유를 모르겠는 일들이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우연이란 말 뜻이 그런 거 아닌가.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인과 관계없이.. 그런데 지금은 '우연이란 없다'라는 말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결국엔 지나고 나면 그때 그런 일이 있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다. 꼭 시간이 흐른 뒤에만 알 수 있는 이유. 얼마 큼의 시간이 흘러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평생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내가 그때 그것을 선택했던 이유, 내가 그때 거기에 갔던 이유, 간절했던 그때 그 시험에 떨어진 이유, 너무 사랑했던 그때 그 사람과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 등등. 세상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다 알고 살아갈 순 없지만 사실 그렇게 모든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지만, 이유에 집착한다기보다 당장 눈앞에 예상치 못하게 벌어진 일들을 두고 조금 더 멀리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기를. 아름다운 숲에도 아픈 나무가 있기 마련이고, 단단하게 자라는 나무가 있기 마련이니까. 우연처럼 일어난 일들이 운명처럼 자리 잡게 되는 것이 바로 그래야 했던 이유이다. 그리고 운명은 나의 숲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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