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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ap May 02. 2023

작은 행복이 잦아지면

나는 매일 행복한 사람

'소확행'이란 말이 등장한 이후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들을 찾기 시작했다. 행복하기 위해 행복을 미뤄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을 느끼려 했고, 그러한 변화들이 '욜로'로 발전한 게 아닐까. 나는 욜로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나 사소한 행복들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치열하게 사는 어떤 이들을 보며 조금씩 행복을 미뤄두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행복을 피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그리고 점점 삭막해지는 하루하루를 느끼면서 행복이란 것이 마치 있는 힘껏 기를 모아 한방에 터뜨리는 특별한 에너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리띠 조여매고 받은 페이로 신나게 장바구니를 비우고 나의 행복 같은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 그 행복은 가짜 행복이었다는 걸 알았다. 명품을 가져본 일은 없지만 나에게 명품 같았던 값비싼 그것이 나의 행복을 대변한다는 게 어쩐지 허무하게 다가왔다. 어떤 실체를 소유해야지만 행복해질 것 같았던 삶이 오히려 반대로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이 채워질수록 진짜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실존적 텅 빈 충만함을 느끼며 정말로 그것이 채워졌을 때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실존적 텅 빈 충만함'이라는 표현은 김창옥 교수님의 강연을 보고 깨달은 표현이다.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오히려 가진 게 없을 때 행복하다는 말로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강연의 포인트는 '물건을 사지 말고 취향을 사라'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순간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고 언제든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고 말이다.


몇 년 전 평범한 어느 날에 갑작스럽게 큰 행복을 느꼈던 일이 있었다. 주말 오후였다. 전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침부터 너무 피곤한 날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배고픔에 배민을 켜서 보고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고 특히 아침이나 점심에 하는 요리를 즐기는 내가 만사 귀찮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버거메뉴들을 보고 있었고 어쩌다 보니 처음으로 햄버거 배달을 시켜본 날이었다. 버거는 금방 도착했고 처음 시켜본 버거에 신나게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빠르게 세팅을 하고, 먹으면서 보려고 준비한 마블을 틀었다. 인트로 음악이 나오고 버거 포장을 뜯는데, 순간 벅차오르는 행복감이 있었다.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불었고 조용한 동네에 이따금 새소리와 집 안에서는 벨이 오도독오도독 밥을 먹는 소리, 보송보송한 털이 다리에 닿는 포근한 감촉까지 오감이 모두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던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와, 너무 행복해"라고 내뱉었다. 어떻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지 싶었다. 어딘가 머리를 띵 맞은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음 날 M언니를 만났을 때 벅찼던 감정을 이야기해 줬다. 언니는 웃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잘 알고 있어서 정말 좋았겠다고 말해주었다. 아직도 그날 느낀 행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마블 영화를 볼 때 행복하다. 좋아하는 영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무 때나 봐도 행복한 영화는 마블 시리즈인 것 같다. 나에겐 그저 즐겁고 재밌는 것을 넘어서는 행복이 있는 영화이다. 버거 또한 같은 의미이다. 여러 가지 좋아하는 음식이 많지만 언제 먹어도 행복하고, 특히 남김없이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참 좋다. 그리고 창 밖 풍경이 예쁜 카페를 가는 것도 나의 행복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 꼭 핫플레이스가 아니더라도 특별한 디저트나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를 찾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곳에는 혼자라도 가서 풍경을 보며 멍을 때리거나 책 한 권을 가져가서 조용히 읽고 오기도 한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흥미가 있는 나는 그런 맛을 찾아다는 것도 좋아한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거의 없어서 새로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잘 먹는 편이다. 그러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는 많이 행복해진다. 음식처럼 음악 또한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만났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있다. 그리고 자연 속을 거니는 것,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에 커튼을 전부 걷어서 들어오는 햇빛 속에 앉아 있는 것, 요리를 만드는 과정, 예쁘게 플레이팅 후 맛있게 먹을 때, 혹은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 가끔은 벨과 함께 낮잠을 자는 것도, 온 집안 대청소를 끝내고 마시는 커피 한잔과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러 나가는 일, 달리는 차 안에서 좋아하는 음악 크게 듣기와 좋아하는 친구랑 소소한 대화 나누기, 여기에 다 적기도 힘들 만큼 내가 매일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결국 작은 행복을 매일 느끼면 나는 매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내가 이러한 행복을 미뤄둔다 해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며 매일 이런 행복을 느끼며 산다고 해서 치열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이 많지 않다 해서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100만 원을 가지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 가 하면, 1억을 갖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행복의 기준은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지금 나의 환경이 나의 기준에 혹은 사회의 기준에 조금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에 있어서는 절대 정답이란 게 없다. 그러나 기준을 선택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워나가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반드시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몫인 것. 그리고 결국 우리가 채우고 싶어 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게 '행복'이 아닐까. 행복은 크기가 아니다. 한 개의 행복을 가진 사람보다 열 개의 행복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행복을 자주 미룬다. 행복을 사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아직도 자주 지금 나에게 행복은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을 자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치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행복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온몸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작지만 잦은 행복들이 넘쳤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오롯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늘 옆에 있길 바란다. 내가 이 글을 마치고 좋아하는 짜장라면에 달걀프라이와 치즈를 올려 먹을 생각에 행복해지는 것처럼!


이 곳은 카페인데 특별하게 메인 메뉴가 버거였어요. 대전 소제동에 있는 워커샵 카페 입니다. 최근 먹었던 수제 버거 중에 가장 맛있게 먹어서 공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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