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가장 좋아하는 머그컵이 깨졌다. 커피를 마시고 씻어서 물을 마시고 또 거기에 차를 마시던,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사용하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컵이었다. 나의 실수로 와장창 깨져버린 컵을 보자마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말이다. 잘 보고 컵을 놓았으면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니 내가 조금만 빨랐어도 눈앞에서 떨어지던 컵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순식간에 일어나 사라져 버린 컵을 보고 있는데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던 언젠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예쁜 컵이나 그릇을 좋아하는 나는 온라인으로 예쁜 식기들을 잘 사곤 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면 예쁘기만 했지 쓰기는 불편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무작정 예쁘다고 사기보다는 잘 따져보고 사는 편이고 온라인보단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컵은 좋아하는 홈퍼니싱 브랜드에 방문했을 때 만났다. 너무 심심하지도 그렇다고 막 특별하지도 않았던 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컵을 손에 쥐었을 때 가벼운 듯하면서도 적당한 무게감과 착 감기는 바디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너무 가벼워도 불안하지만 컵이 너무 무거우면 손이 잘 안 가게 된다. 특히 머그컵 중에는 그런 컵들이 많아서 집에도 예쁘지만 안 쓰는 머그컵이 몇 개가 있다. 그렇게 그 컵과 함께 집에 왔고 그 이후로 언제든 쓰는 나의 최애 컵이 되었다. 컵을 쓰면서도 '와 이래서 직접 보고 사는 게 중요하구나' 몇 번이고 깨달았다. 그런데 살면서 그릇을 깨는 일이 한두 번 있을까 싶은 내가 컵을 깨뜨렸고 하필 깨진 게 '그 컵'이었다. 똑같은 컵은 다시 사면된다. 그런데 다시 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만큼 '그 컵'을 많이 좋아했다.
괜한 감정을 끌어안고 있지 말자 싶어 뭉게뭉게 한 감정의 연기를 휘휘 저어보며 하루를 보냈다. 일부러 기분 전환을 위해 저녁으로 마블 시리즈를 보며 오랜만에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러던 중 친구 A에게 전화가 왔다. A는 오늘 새로운 일이 있었는데 나의 연결고리로 인해 생긴 일이어서 오늘 어땠는지 얘기하며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A가 좋아하니 정말 내 일처럼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한 건 없었다. 나는 A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쓰여서 다시 만나 그 일에 대해 몇 마디 더 나눴고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또 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는 일이야말로 할 수 없을 거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구석에서 치킨을 뜯고 있는 내가 이렇게나 고맙다는 말을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사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정말 행복했다.
A와 통화가 끝나고 저녁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E에게 전화가 왔다. 하루에 다른 사람이 연달아 전화 오는 경우가 거의 없는 나는 오늘 무슨 날이지 싶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갑자기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다른 날 같았으면 뜬금없는 전화는 미룰 때도 있는데 오늘은 바로바로 받았다. 더군다나 E가 갑자기 전화하는 경우는 처음이어서 당장 받아야 할 거 같은 마음이기도 했다. E 하고는 40분가량 길게 통화했다. E는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에 놓여있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본인이었는데 머리와 마음이 달라 선뜻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사를 알고 있는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헤어져야 한다'였다. 함께 있지 않을 때 내가 뭐하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함께 있을 때 나를 바라보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무엇보다 함께 있을 때 비참함을 느낀 다면 더더욱. 언젠가 이런 상황을 마주했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가장 가까이 있던 친구가 나를 위해 헤어지는 게 맞다고 얘기해 주었을 때 날카로워질 때로 날카로워진 나는 그 말을 듣는 것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지금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 차갑게 대답했고 당황한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선뜻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끝까지 얘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이런 말 듣기 힘들 거 아는데, 사랑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때의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해준 사람도 말을 꺼내기까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순간 나도 울컥한 마음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보다 화가 났던 건 오랜 시간 까만 마음을 끌어안고 힘들어하던 E가 다시 밝게 되살아나고 있던 시기에 이런 감정을 심어주었다는 것이었다. E는 나에게 누군가의 행복으로 인해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되면 진심으로 기쁘고 좋지만 정말 내 일처럼 행복한 감정까지 다다를 수 있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조금의 사사로운 감정 없이 말이다. 그런데 요즘 E를 보며 그리고 A를 보며 행복을 느꼈다.
이번 일 때문에 E가 다시 까만 마음에 휩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사랑의 백 퍼센트 중에 이백, 아니 이만 퍼센트를 받아도 마땅한 사람에게 비참함이란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에 그 감정에서 어서 빠져나오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유를 자꾸만 나에게서 찾는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 내가 더 나았더라면.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오면 관계에서 빠져나오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모든 게 내 탓이 되어버리면 나만 잘하면 되는 것처럼 여겨서 힘들어도 기다리고 이해해 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너무 힘든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노래 가사가 늘 사랑이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만 해도 기쁘고 고맙고 행복한 마음이 샘솟아야 한다. 나의 사랑이 생각만 해도 마음이 먹먹하고 힘들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욕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