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을 애써 부인하면
2020년 두 차례나 ADHD 진단을 받았지만 난 의사의 말을 믿지 못했다. 번아웃과 게으름, 완벽주의가 뒤섞인 나를 의사가 과하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자신을 돌보는 일(집안일이나 씻기)을 미루긴 해도 충동적인 편은 아니었다. 자기 돌봄 행위가 내 몸과 마음을 정지시킬 뿐이었다.
문제는 그 ‘미룸’이 업무 영역까지 침범한다는 점이었다. 기사 마감이 다가오면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너무 떨려서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서점으로 향했다. 의사를 불신해도 책은 믿었기에. 무기력, 불안증, 게으름, 완벽주의, 번아웃 등 관련 서적을 샅샅이 뒤졌다. 처음엔 단순히 무기력과 불안이 함께 오는 줄 알았다. 스스로 엉터리 의사를 자처하며 ‘ADHD가 아니라 불안해서 이도저도 착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가짜 진단을 내렸다.
오랜만에 책장에서 그 책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밑줄이 빼곡한 페이지를 보며 나의 ‘한 시절’이 떠올랐다. 내 얘기다 싶으면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며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읽었던 ‘집착의 시절’이었다(집착도 ADHD의 증상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추억 여행은 결코 아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 내 방황은 참으로 짙었다. 다만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읽다 보니, 불안과 무기력 역시 ADHD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문장을 되짚어본다.
결국 극복하는 방법은 생각을 줄이고 행동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최주연 박사의 불안 버리기』에서)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단지 게으르거나 성공에 무관심해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 무기력은 해야 할 일을 하게끔 이끄는 의욕이 상실된 상태이다.
무의식 중에 배워버린 무기력은 모든 일에 악영향을 미쳐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
(『문제는 무기력이다』에서)
불안과 무기력의 원인도 결국엔 ADHD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다시 의사에게 찾아가 ADHD의 근원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ADHD가 의심되는 어린 시절 삽화들, 트라우마를 유발할 만한 사건들이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치료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