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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Apr 22. 2024

월화 6-2

어느 해변에서 만난 소나기처럼

다음곡 녹음 일정 잡히기 전까지 당분간 일요일 노래 연습 일정 없이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지난주엔 녹음실을 겸한 노래 연습실을 꾸미느라 다 보내버렸고, 오늘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그래서 오래전 써놓은 향연(2006)을 찾아(한글파일)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소설 월화(어느 해변에서 만난 소나기)를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했습니다. 벌써 오후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노래 연습에 열중하느라 오랫동안 등장인물과 소통하지 않은 탓입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은 끊임없이 등장인물들과 소통하고 배경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맥을 놓아버렸으니...... ㅠㅠ   


그제 음악을 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음악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들의 가난?이 잠시 부러웠습니다. ㅎ


아무튼 시작은 해보겠습니다. 연말 즈음에 출간예정인데 이래서야 탈고를 할 수 있을지........


여기서부터 소설 월화(어느 해변에서 만난 소나기)입니다.


나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아래서 지난밤을 생각했다. 아니 어젯밤 일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저수지에 빠진 줄 알았던 월화가 길 위로 달아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뒤쫓아갔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차로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수미에게 돌아가야지, 내가 미친놈이지,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직진하고 있었다. 전조등 불빛 속으로 월화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신발을 벗어 들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걷고 있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교정 노트를 덮고 잠시 눈을 감는다.


교도소에 갇혀 있지 않다면 나는 지구 끝까지라도 도망간 그 아이를 쫓아갔을 것이다.


그 아이와 살던 그 집이 내 고향인 것처럼 그립다. 그 아인 습관처럼 또 나를 떠날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 아이가 나를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항문에 삽입하고 성교를 했다. 우리가 살던 그 따뜻하고 안온하던 그 집에서 말이다.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누웠는데 애무를 하다가 내 성기가 우연히 그 아이의 항문을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거기다 해,라고 했었다.


그 아이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나는 보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못했다. 사정한 뒤에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아인 대답대신 소리 내 웃었다. 그 아이의 그 막된 웃음소리가 그립다.  


다시는 거기다 안 할게. 나는 말했다. 그리고 왜라고 묻는 그 아이에게 다시는 너를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고 나는 말했다.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날 그 아이의 온몸에 돋았던 소름이 고통이었는지 아니면 쾌감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항문에 삽입했기 때문에 도망간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는 나와 사는 동안 늘 도망 다녔고 나는 늘 잡으러 다녔으니까.


내가 그 아이를 찾으러 나섰다가 검문소에서 붙잡히지 않았다면, 도주에 성공했다면 나는 또다시 그 아이와 눈물의 재회를 하고 어디선가 여전히 미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슨 죄로 복역하고 있는지 궁금해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나는 그 아이와의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회삿돈을 횡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탕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 아이와 함께 살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더 많은 돈을 횡령했다. 그러다 그 아이를 데리고 도망자가 되어 떠돌았다.


이미 출국금지가 되어 있어 한국 땅을 벗어날 수 없었던 탓에 연고가 없는 지역을 떠돌았다.




그 아이로부터 나를 구해준 것은 법인가? 아니면 교도소인가?  검문소인가? 아니면 내가 내민 수표를 거절한 그 경찰?


    



나는 동승석 창을 내리고 월화 옆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월화는 여전히 앞만 보고 걸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할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 아이 걸음에 맞춰 천천히 나아갔다.


한 번 할래?

얼마쯤 가고 있는데 월화가 문득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 우리는 한 번도 안 한 사이였다. 할뻔한 일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말이다.


갑자기 수미 선생님의 남자를 빼앗고 싶어졌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잖아. 나는 가장 가난하고 불행한 여자고.


일단 차에 타.


그 아이는 순순히 차에 탔다. 그리고 월화가 원하는 대로 읍내 외곽에 있는 호텔로 갔다. 호텔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아이와 나는 뒤엉켜서 입술을 부비고 혓바닥을 주고받으며 았다.


그러나 정작 섹스는 시시하게 끝이났다. 그 아이의 몸에 삽입하는 순간 나는 사정 해버렸고 그 아이는 그 막된 웃음을 웃는 대신 나를 누나처럼 안아주었다. 유일하게 그 아이가 어른스럽게 여겨졌던 순간이었다.





호텔을 나와서 그 아이가 좋아하는 돼지곱창전골과 함께 소주 두 어 병을 마시고 나서였다.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읍내 초입에서 음주단속에 걸렸다. 보증인이 있어야 보내준다고 하는데 수미나 청년회 회장을 부를 수는 없었다.


고민하는 나를 대신해서 그 아이가 아빠라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늙은 신사가 월화를 동남아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핥고 빨고 한 인간일 것이다.


본래 월화는 껍데기뿐이었기에 그 놈이 월화의 영혼까지 핥아 먹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아무튼 그 늙은 신사 덕분에 무사히 풀려나서 룸살롱 같은 술집엘 가게 되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 일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월화를 달의 여신 난나로 치켜세우며 젊잖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던 그 작자를 죽이고 싶었던 기억이 나긴 한다.   


샤워를 하면서 나는 내내 그 아이를 저주했다.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숨어 있던 욕망을 확실히 깨워준 그 아이. 아니, 사실은 수미와 첫 경험을 하면서(진짜 첫 경험은 늙은 창녀이지만 그것은 그저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못 이겨 흙탕물을 마신 거라고 할 수 있겠다.) 비뚤어진 욕망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뒤엉켰던 머릿속도, 비현실적이기만 하던 기분도 함께 씻겨 내려간 듯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그제야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 위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타락한 자의 위장이 뻔뻔스럽게 꿈틀거렸다. 수미가 기다렸다는 듯이 국과 밥을 퍼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분홍색 트레이닝 바지와 하늘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는 수미.


수미가 성인이 된 후로 평상복차림을 하고 있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던 탓일 것이다.


 수미의 간편한 차림새가 뜻밖에 마음의 거리를 좁혀주었다. 그러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수미를 뻔뻔하게 바라보기에는 아직 그날의 수치심과 미안함이 남아 있던 탓이었다.


수미의 처녀성에 대한 괴로운 집착, 처녀성이 파괴된 이유를 기필코 알아내려는 광기 어린 폭력, 따위가 떠올라 수치스러웠다.  


 수미는 내가 수저를 드는 것을 보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침대에 놓여 있던 얇은 이불과 침대시트를 들고 나와서 세탁기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베개에서 막 벗겨낸 베갯잇과 방석 커버 등 거실에 있는 것까지 모두 걷어다가 세탁기에 넣었다.




마을 뒷산에서 받아온 약수예요. 물맛이 참 좋아요.


다시 돌아온 수미가 내 오른편 가까이에 맑은 물이 담긴 컵을 내려놓았다. 마을 뒤 편평한 바위 옆. 졸졸졸 흘러내리는 물. 청년회 회장과 함께 그곳에 가서 물을 마셔본 적이 있었다.


수미가 어느새 그곳까지 다녀온 모양이었다. 나무로 둘러싸여 그늘이 짙고 서늘해서 피서하기 좋은 곳이었다.


시원하다. 정말 달고 맛있어.


간밤에 고생하셔서 물맛이 더욱 좋게 느껴지는 것도 있을 거예요.


수미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다시 컵에 물을 가득 채웠다.


식사했니?


먼저 먹었어요. 배가 고파서........


잘했군. 그런데 해장국은 어떻게.......


사찰집사님이 끓여 오셨어요. 일어나시면 드시게 하라면서요. 술 드신 거 아시고 끓여 오셨는지, 아니면 그냥 끓여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수미가 활짝 웃어 보였다.


 남자가 술 마시고 그러는 거 처음 봤어요.


.........


괜찮던데요. 창백한 고뇌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마치 우리 껍질 속의 참모습 같았다고 할까. 그 모습이 왜 감격스러웠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니니. 그러다가 내가 아주 타락해 버리면 어쩌려고.


비약이 심하다 여기겠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났어요. 젊은 시절 제어할 수 없는 욕정에 빠져 허랑방탕하게 살았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성자가 된 그분.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을 떠올렸어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낮은 곳까지 가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성자가 될 수 있었겠어요.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이옵니까? 지금은 왜 아니랍니까? 어찌하여 제 더러움이 지금 당장 끝나지 않나이까?’


수미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울부짖음을 시처럼 낭송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3:13-14)


나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탄식 중에 ‘집어 읽어라. 집어 읽어라.’는 어린아이의 노래를 듣고 펼쳐 읽었다는 로마서 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늦게야 주님을 사랑했나이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주님을 사랑했나이다!


수미가 다시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참회의 고백을 읊조렸다.

 

아우구스티누스같이 위대한 신학자와 비교해서도 안 되지만 수미의 그런 논리도 위험한 거야. 어떤 명목으로든 타락을 자처해서는 안 되지. 타락한 과거가 미화되어서도 안 되고. 그리고 어쩌면 아우구스티누스가 타락했다기보다는 정결한 인간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보는 게 옳을 거야. 그는 인간이 지닌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욕정조차 괴로워했던 건지 모르는 일이야. 그러나 그는 결국 욕정에 사로잡힌 채 천한 여인과 결혼을 했고. 술에 취해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지. 하지만 그는 욕정에 굴복하지 않고 늘 괴로워하며 탄식하기를 자주 했지.


알아요.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가장 낮아지셨고 낮은 곳에 계셨고 낮은 자들과 함께 먹고 마셨어요. 그러나 시험에 넘어지지도 않았고 더더구나 타락은커녕 음란한 생각조차 죄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죠. 그건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의로 낮아졌지만....... 타락으로 이어졌죠. 낮아진다고, 아니 타락했다고 모두 성자가 되는 건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락하고 말겠죠. 하지만 선생님은 타락한다고 해도 언젠간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선택된 분이죠,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어쩌면 선생님의 타락의 크기만큼 온전해질 거고요.


수미가 아주 타락을 조장하는군. 아무리 주관적인 감정이라고 해도 굉장한 왜곡이야. 아무튼 온전해지려면 더 많이 타락해야겠는 걸.


저는 끝까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할게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처럼. 중고등부 때 사랑한 선생님이 아닌 제 남편될 남자를 위해서 말이에요.


고맙고 미안해.


선생님이 목회자가 되었으면 해요. 아버지께서도 그런 말씀하셨어요.


번 일로 이사장님께서 실망하셨을 텐데. 나는 성직자로서 살 자신도 없지만 인품도 안 돼.  


성에 대해서 무지한 건, 선생님이 너무 깨끗해서 그런 거예요. 오염되지 않아서.......


나는 차마 고개를 들고 수미를 바라볼 수가 없어서 해장국을 연신 퍼먹었다.


제가 올라가면 회사로 복귀하시게 될 거예요. 신학공부 하시는 거 생각해 보세요.


........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또다시.........


그건 하나님 앞에서 맹세할게. 다시는 수미에게 폭력이나 폭언은 하지 않을 게. 신학공부도 해보고 싶어. 목회자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수미는 현실이었다. 그녀는 내 약혼녀였고 곧 내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식사를 다 하고 또다시 물을 들이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자기야, 아침에 해장국 먹었어. 내가 엄마한테 끓여 주라고 했는데. 속 풀이에는 북어콩나물 해장국이 딱이거든.


송수화기를 들자 월화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낭랑한 음성이었다. 죄책감이나 수치심이라고는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내가 꿈을 꾼 것인가 여겨질 정도로 떳떳한 월화.


아, 그랬군.


늙은 신사와 뒤엉켜 있던 월화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덤덤한 기분으로 말했다. 일부러 덤덤해지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저절로 덤덤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당분간 집에 못 갈 거야. 엄마 좀 잘 부탁해. 이 삼일 뒤에 정신병원으로 약 타러 가야 할 건데. 자기가 엄마 데리고 갔다 와줘. 더운데 엄마 혼자 버스 타고 갔다 오다가 쓰러질걱정 돼. 틈틈이 엄마한테 전화는 할 거야. 자기한테도.

자기야, 나중에 우리 함께 여행 가자. 알았지.


그 아이는 일방적으로 말하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몰려와 마음을 한바탕 휘저어 놓았다. 어찌할 수 없는 무려감이 엄습했다. 무덤덤함이 아니라 월화에게 굴복한 거였다. 월화는 나를, 내 몸을, 정신을, 영혼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던 것. 종으로 삼아버렸던 것.


 욕정과의 싸움에 지친 아우구스티누스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울음을 터트리며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이옵니까? 지금은 왜 아니랍니까? 라며 탄식할 때도 그랬을까. 내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비틀어진 애욕. 그리움. 두려웠다.


잠깐 사이 식탁은 벌써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수미가 등을 보인 채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수미 옆으로 다가가서 몇 개 안 되는 그릇을 헹궜다. 수미가 세제 묻은 수세미로 그릇을 닦아놓으면 내가 받아서 흐르는 물로 헹구는 식이었다. 더는 타락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서 수미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게 내 진심이었고 원이었다. 그런 생각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날 나는 평화로움을, 수미가 주는 고요함을 놓기 싫어서 서울까지 동행했다. 읍내까지 가서 자동차를 찾고 그리고 서울로 갔다. 그리고 수미를 집 근처에 내려주고 다시 월오리로 돌아왔다.


읍내서부터 어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버림받은 것처럼 쓸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아이 월화가 그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늙은 신사를 찾아서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읍내를 빙빙 돌다가 결국 사택으로 돌아왔다.


그 아이의 언니 인화가 와 있었다.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인화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를 선교사라 부르면서 말이다.




                                                   다음에 계속



(이 소설은 많은 혼돈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령 그 아이 월화의 아버지가 살아 있어야 할지, 혹은 그 아이 엄마가 언제 죽어야 하는지, 늙은 신사의 등장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지, 이 대로 두 명의 화자로 진행하는 것은 괜찮은지 등. 정해놓고 시작했지만 쓰다 보면 뒤집어지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합니다.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탈고하기 전에 바로잡겠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장편소설 향연을 연재할까 합니다. 물론 월화(어느 해변에서 만난 소나기처럼)도 틈틈이 계속 써나겠습니다. 정기적으로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읽어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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