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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Feb 19. 2024

처음 본 여자와 길에서 입 맞추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격정적이게 만들었을까!

단편소설입니다.


                                     

                                       1


거의 일 년 전 일이다.  처음 본 여자와 길에서 입을 맞추었다.  그냥 입을 맞춘 게 아니라 뜨겁고 깊은 키스였다. 왜 입을 맞대고 서로 격렬하게 혓바닥을 빨아대야 했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여자와 나는 초면이 아니었다. 이사하기 전에 살던 현대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출근길 혹은 퇴근길에 두어 번 눈길이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한 번은 그 여자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내릴 때였고 또 한 번은 라일락 향기가 떠다니는 어느 봄날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마주 보고 스쳐 지나갈 때였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 여자와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애틋함에 사로잡혀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스쳐 지나고 나서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그 여자의 눈빛만큼이나 내 마음도 슬펐다. 짐승처럼 부끄럼도 모르고 서로 냄새를 몸을 부벼댈 수 없었기 때문일까!

  

당시에 느꼈던 그 설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길이 없다. 나도 오히려 묻고 싶은 심정이다.


어쨌든 그런 저런 이유로 그 여자와 나는 완전 초면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처음  보는 여자라 했다.



   

당시, 아내와 다툰 나는 자정 넘어 집을 나왔다. 사실 우리는 이혼하기 위해 별거 중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아내가 집에 와 있었고 결국 다투었다. 별거 전에도 가끔 있는 일이었다. 아내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심한 잔소리를 듣게 되면 나는 소리 없이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곤 했다.


아내가 반려견 순이를 찾으려고 방으로 들어간 사이나 욕실에서 오줌을 쌀 때가 집을 나올 기회였다.   

  



거리를 떠돌며 아내를 비난하는 게 분을 푸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남은 분을 풀려면 알콜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늘 술집 앞을 기웃거리다 돌아서기 일쑤였다. 술집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늘 돈이 부족해서 한숨을 달고 사는 아내를 생각하면 몇 만 원을 술값으로 써버릴 마음이 사라졌다.     


그렇게 근성이 옹졸한 나는 집을 나오면 갈 곳이 없어 발바닥이 아프도록 동네 근처를 맴돌았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칠 무렵 이젠 남의 동네가 되어버린 현대이파트 정문 앞까지 가게 되었다.


그 여자를 염두에 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 여자가 여전히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사실 그동안 나는 그 여자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현대편의점에 들러 맥주 피처 한 병과 새우깡을 샀다. 그리고 막차마저 끊어진 현대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 종이컵으로 맥주를 마셨다. 그곳에 앉아서도 보이는 현대아파트 정문 옆 현대술집은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앞서 말한 그런 이유로 나는 현대아파트에 살 때조차 그 술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근처 다른 술집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항상 버스정류장이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쉼터 평상에 앉아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러니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고 해서 안 가던 술집에 발을 들여놓을 그런 위인은 못되었다.  

   

술집에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마트나 편의점에서 산 맥주 피처 한 병과 새우깡이면 우울하던 기분을 풀기에 충분했다. 가끔은 멀리 사는 불알친구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긴 통화를 곁들일 수도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들이고 아내의 부재를 즐길 수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심야의 버스정류장은 혼자 술 마시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곳이었다. 취가가 올라 조금 큰 목소리로 아내를 비난하고 원망해도 눈살을 찌푸릴 사람이 없었고 가끔 사는 게 서러워져 소리 내 울어도 부끄러울 게 없었다. 그러니까 심야의 버스정류장은 온전히 나를 위한 술집이었다.

     


피처 한 병을 다 비운 나는 손님으로 가득 찬 현대술집을 등지고 새로 입주한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그때쯤이면 아내에 대한 원망은 다 증발하고 없었다. 대신 반성하는 마음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훈훈해지기 십상이었다.


다 내 탓이지. 내가 못난 거지. 사내놈이 아내나 비난하고. 누가 나 같은 놈하고 살아주기나 한데.    

  

결국 나는 많지 않은 월급 모아서 아파트까지 장만해 준 아내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 되고 만다. 실제로도 집에 돌아가서 자고 있는 아내의 발바닥을 바라보며 숨죽여 운 날도 있었다.

그 순간만큼 아내는 거룩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그날도 아내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지름길로 가려고 큰길을 벗어나 후미진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마주 오고 있는 그 여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어둠 속이었지만 나는 그 여자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그 여자의 눈은 알 수 없는 빛으로 내 영혼을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나는 마치 태풍에 휘청이는 나무처럼 쓰러지거나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의지할 것은 나약한 이성이었지만 꿋꿋하게 태풍이, 아니 그 여자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여자는 마치 나를 기다려왔다는 듯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나에게 입을 맞췄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어서 나는 그 여자의 입술을 피하지 못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고드는 그 여자의 혀를 삼킬 듯이 빨았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입맞춤을 해본 기억이 없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처음 해본 입맞춤도 수줍음과 서투름으로 인해 짧고 간결했다.


사실은 입 맞춘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미루어 추측하건대 그랬을 것 같다는 것이지 첫 키스의 추억 같은 건 아예 없었다.


아내와 허물없는 사이가 된 뒤엔 입맞춤이 더 짧아졌다. 서로 무덤덤해진 탓인지 그저 입술을 잠깐 가져다 대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키스의 추억 뭐 이런 것이었다. 내가 영화나 소설처럼 뜨거운 입맞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나는 그 여자와  입맞춤 때문에 죄책감으로 꽤 오래 괴로워했다. 하지만 차츰 나는  미움과 비난을 핑계로 괴로움을 이겨냈다.  


 여자를, 혹은 그날의 입맞춤을 깨끗이 잊었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아내가 나를 무시하는 횟수가 증가하는 만큼 죄책감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처럼 흐려졌다.  


그렇지만 그 여자를 보고 싶다거나 그날의 일이 다시 일어났으면 하는 기대는 없었다. 그 반대였다. 그 여자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았다.




아내의 감질나는 사랑이라는 것도 아이가 생기고부터 아예 그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대신 아내의 마음엔 나를 향한 경계심과 미움이 자리 잡았다.


아내는 나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헛점과 빈틈 투성이로 여겼고 우선순위에서 항상 마지막이거나 아예 순위 밖이었다.      


모든 것은 아이가 먼저였다. 하지만 아내가 아이들을 끔찍하게 여기고 아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아이들만 행복하다면 나 자신이야 미움을 받든 버림을 받든 상관없었다.  


아내는 그런 내 마음을 잘 아는 듯 나에 대해서만큼은 더욱더 오만해졌고 급기야 베개를 들고 아이들 방으로 옮겨갔다.


아이들이 분가한 뒤에도 돌아오기는커녕 반려견 순이와 같이 샤워를 하고 한방에서 잤다.      

어쩌다 순이가 아내의 손길을 마다하고 거실에서 자고 있으면 아내는 텔레비전 시청권을 가차 없이 빼앗았다.


나는 소리를 죽이고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빛이 잠을 더 방해하는 거라며 나를 동정심도 배려도 없는 멍청한 인간으로 만들어놓고 순이하고만 작별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갔다.      


순이야, 잘 자. 아구구 이쁜 것, 엄마하고 안 잘 거야. 그래 거실에서 자고 싶으면 자. 아구구 이쁜 것.


 이러고 는 쳐다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소외감과 슬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애써 웃음으로 넘기곤 했다.  

         

내입으로 말하기는 치사하고 남부끄럽지만, 바람 한 번 피운 적 없고, 쉬는 날은 당연하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밀린 설거지며 빨래, 집 안 청소도 알아서 다 해왔는데 그럴수록 아내는 나를 무시하고 미워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다.


나를 그토록 미워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나를 꼭 꼭 다시 만나 살고 싶다는 아내에게 나는 꼭꼭꼭 다른 여자를 만나겠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아내의 말 대로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외롭다. 이제 더 이상 내게 남은 죄책감이나 괴로움 따위는 없다. 대신 나는 차츰 그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다. 어쩌면 또 한 번의 격정적인 입맞춤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2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나를 대놓고 무시하고 미워하는 아내 대신 그 말도 안 되는 입맞춤을  꿈꾸는 슬프고 서러운 오후였다.


저녁 무렵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뒤지는데 그 여자인지 그 갑작스런 입맞춤인지 모르지만 못 견디게 그리워 눈물이 났다.


냉동실까지 열고 탐색하듯 훑어봤는데 마땅히 해 먹을 것이 없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쓸쓸히 주방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임신한 딸이 연락도 없이 사위와 함께 들이닥쳤다.


나는 그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지우밝은 얼굴로 아이들을 맞았다.


거실에서 순이와 놀고 있던 아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 보기 좋았다. 나보다는 순이가 순이보다는 딸과 사위를 좋아하는 아내였다.


세상없이 자상하고 훈훈한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는 미움받는다는 것도 잊고 호기로워졌다.


오랜만에 삼겹살이나 먹으러 갈까? 마 전에 우리 아파트 단지 앞에 고깃집이 개업했는데 지나다니면서 보니까 손님이 많더라. 


아이들을 핑계로 고기 먹을 생각에 나는 약간 신이 났다.


이자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임신 중인 애를 데리고 어딜 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의 눈흘김이 뾰족하게 와서 박혔다. 이제는 무뎌질 법도 한데 여전히 따가웠다.


엄마, 나 고기 먹고 싶은뎅!

딸이 코맹맹이 소리로 지 엄마한테 애교를 부렸다.


채린이가 고기 먹고 싶대잖아. 당신 어서 마트 가서 장 봐 와. 간 김에 사위가 좋아하는 잡채거리도 좀 사고. 


그럼 그럴까.


나는 아이들 앞이라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 굽고 잡채 만드는 일이야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가 밥숟가락만 놔줘도 고마워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토록 슬퍼지는 건 왜일까.


과일도 좀 사고. 


아내가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바람에 못 견디게 그 여자가 보고 싶었다. 내가 그 순간 눈물을 찔끔 흘린 것도 그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온갖 전염병이 차고 넘치는데 가긴 어딜 가니. 니 아빠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야. 코로나나 독감이 창궐하고 있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뜨잖니.

임산부는 면역력이 저하돼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돼.


내 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말은 백 번 맞다. 그래서 더 슬프다.




나는 사위가 좋아하는 잡채부터 만들려고 당면을 미온수에 담갔다. 아내는 당면을 삶는 것보다 담갔다 충분히 불었을 때 볶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조기어묵을 길게 채 썰어 볶는 동안 사위가 야채를 다듬고 씻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재료들을 차례로 볶으면 되었다.


마지막으로 볶은 당면과 재료들을 섞는데 그 사이 사위가 포도와 딸기를 씻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꼭 나 같은 녀석이 딸의 남자라는 것이 다행스럽다.


아이들은 잡채를 먹느라 과일은 손도 대지 않았다.


아버님, 잡채가 너무 맛있는데요.


사위가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래  많이 먹게.


배가 고픈 딸기와 샤인머스켓을 번갈아 집어 먹으며 흐뭇하게 웃어주었다.




삼겹살을 구워 식탁에 가져다 놓으면 순식간에 없어졌다. 나는 고기를 올려놓고 잠시 막간을 이용해 딸기와 샤인머스켓을 폭풍 흡입했다.


아내가 딸하고 사위 먹게 그만 먹으라 했지만 배도 고프고 또 워낙 오랜만에 먹는 비싼 과일이라서 절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를 삼키면 두 개가 먹고 싶어 지는  희한한 식탐이라니.


저는 아버님이 해주신 잡채면 됩니다.


아내가 사위 앞으로 끌어다 놓은 과일접시를 사위가 다시 내 앞으로 밀었다.


 아내가 눈이 찢어져라 나를 째려봤다.


엄마, 아빠 드시게 놔둬.


딸이 응원해 준 덕분에 나는 딸기와 샤인머스켓을 실컷 먹었다. 다행히 미친  과일 식탐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덕분에 딸기와 샤인머스켓이 각각 대여섯 개씩 남아 딸과 사위가 입가심은 했다.  


고기를 먹는 틈틈이 일어나서 설거지를 한 사람은 사위였다. 마지막 설거지까지 끝낸 사위가 나가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겠다며 챙겨갔다. 나는 사위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딸이 꼭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사랑받는 게 너무 좋아 눈물이 날지경이었다.




문제는 딸과 사위가 돌아간 뒤였다. 아내는 가 미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쌍심지를 켜고 온갖 비난과 불평을 퍼부었다.     


는 결국 참다못해 집을 나왔다. 딸 주려고 사 온 과일을 자신이 다 먹어버린 데 대한 자책도 컸지만 아내가 쏘아대는 미움의 화살이 가슴에 박힐 때마다 죽을 것 같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아파트 단지 주변을 한 시간 이상 배회하다가 아파트 단지 옆 정자에서 피처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리 예전에 살던 그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만에 하나, 일 년 전, 그날, 그때처럼 그 여자를 만나면 아내와는 영영 이별하게 될 것 같아 주저앉았는데 술기운이 내 의지를 무너트린 것이다.


나 없이 살아갈 아내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걸음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나는

큰길을 벗어나 그 여자와 뜨거운 입맞춤을 나눴던 그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사실 는 그날 이후 현대술집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그 여자가 싫다거나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일말의 양심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는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하다못해 이름도 성도 모른다. 나이조차 오십 대 전후로 짐작할 뿐이다. 그 여자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여자와 길에서 나눴던 뜨거운 입맞춤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여자의 입맞춤 한 번이면 켜켜이 쌓인 외로움이 흔적도 없이 증발하고 말 것 같았다.    

   



현대아파트 앞에 다다를 때까지 그 여자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아내는 운이 좋은 여자였다.

밥도 못해 먹는 여자를 버리려 한 내가 나쁜 놈이지, 반성하며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 마음은 갑자기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빠졌다.


그러면서도 그 여자, 혹은 뜨거운 입맞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뒷길로 걸었다.


그러나 길을 다 벗어나도록 그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뜻밖에도 아내가  방에 들어와서 자고 있다가 졸리운 눈을 뜨고 쳐다봤다.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내 맘이지.      


아니, 그러니까 왜 갑자기 내 방에서 자느냐고.     


여기가 당신 방이야? 내 방이기도 하지.     


여태껏 안 그랬잖아.      


그냥 가?


그게 아니라. 왜?     


아까 당신 춥고 외롭다고 해서 오늘만 같이 자 주려고 그런다. 됐니?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빨리 씻고 와서 자.


알았어. 그런데...... 나랑 키스 한 번만 하자.     


뭐, 이자가 미쳤나. 뭘 먹고 왔길래.......     


왜 부부가 키스도 못하냐.     


아니, 생전 안 하던 걸 하자고 하니까 그렇지.     


할 거야 말 거야.      


어서 씻기나 해.      


는 후닥닥 씻고 아내 곁에 누웠다. 그리고 입술을 들이밀었다.     


아니, 오늘 밤 이자가 왜 이래.     


내가 이자냐, 나 원금이야.      


쭈, 안 하던 소리도 하네. 그래 원금은 원금이지. 그런데 왜 키스를 하려고 하는데.     


부부가 키스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지 묻기는 왜 물어. 물으면 그래해.라고 대주기가 쉽냐. 그냥 하면 하는 거지.     

 

아내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너무 지나치게 배려한 게 문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한다.      


는 아내의 입술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아내는 입을 꼭 다문 채 열지 않았다.      


입을 좀 벌려봐.      


술냄새나잖아.     


나한테 열정이 있으면 그 냄새가 무슨 문제가 되겠냐.      


열정, 정말 이자가 뭘 잘 못 먹었나.


그래 잘 못 먹었다. 어서 입이나 벌려.    

 

가 입술을 부비며 혀를 들이밀자 마지못해 입을 조금 벌렸다.      


혓바닥은 어디다 숨긴 거야. 혓바닥 좀 내밀어봐.      


는 또다시 아내의 입술을 덮쳤다.      


아내의 혀가 닿긴 했지만 도대체 뜨겁게 빨아댈 수가 없었다.     


혀가 그 정도밖에 안 돼.      


나 혀 짧아.     


좀 팍 내밀어봐.      


뭐 하게?     


빨아먹게.     


이자가 미쳤나. 왜 남의 혓바닥을 빨아먹는다고 지랄이야.      


그럼 내 혓바닥 좀 빨아봐.     


아, 저리 가.


가 혓바닥을 쑥 내밀자 아내가 를 밀쳐내고는 베개를 들고나가버렸다.       

    



나는 다시 집을 나왔다. 밀려오는 외로움과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예전에 살던 현대아파트로 향했다.


당연히 뒷길로 갔지만 그 여자는 만날 수 없었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피쳐 한 병과 새우깡을 사들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홀짝홀짝 마시며 여자를, 그날의 뜨거운 입맞춤을 그리워했다.




술을 거의 다 비워갈 때였다. 그 여자가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일 년 전 그날 그때처럼 항긋한 술냄새도 났다.


우리는 뜨겁고 긴 입맞춤을 마침내 끝내고 다정히 손잡고 현대술집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앗, 당신이.....


이자가 또 이러네 작년에도 이 집에 들어와서는 처음 본 것처럼 그러더니..... 모르는 여자가 미쳤다고  길가는 남자 붙들고 키스질하겠냐?


우리가 언제! 당신은 혀가 짧잖아.


술 마시면 내 혀도 길어져. 그리고 뜨거워지고. 나도 작년에 처음 알았어. 집에서 혼자 술 마시다 나왔는데 어두운 길에서 만나니까 어찌나 반갑던지.  그때 이혼은 안 되겠다 싶어 마음 바꾼 거잖아. 설마 기억 못 하는 거야!


그게 당신이라고. 


이자가 정말.....


지상주차장에서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너도 나를 그렇게 바라봤잖아. 이혼이 그렇게 마음 아플 줄 몰랐다며 그냥 다시 살자고 먼저 말한 게  너거든. 바로 이 술집에서 말이야.


                  끝



읽어주신 모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연재하던 장편소설은 완성되는 대로 출간예정입니다.


하지만 계속 연재 여부는 아직 미정입니다.

가능한 연재 하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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