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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규 Sep 01. 2022

어떻게 팔아야 할까?

마케팅 회사에, 월 구독료 400만 원 짜리 B2B 솔루션을 팔아봤어요.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데요. 벤디트의 황라온 CMO님은 제게 있어서 그런 순간을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느끼게 했던 분이에요.



 오늘은 수많은 사건들 중에 사소하지만 큰 울림을 느꼈던 이야기에 대해 나눠볼까 합니다.



 2018년의 라온님은 군대를 막 전역한 상태였어요.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당시 라온님은 B2C 마케팅 경험을 갖고 있었고, 과장이 아니라 중학생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시립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을 다 대출받아 봤을 정도로 독서광이었어요.



 성인이 된 이후에 시립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친구가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시립 도서관을 이용했던 모든 사람들 중에 대출 권수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증언해주었을 정도였죠.



 그런 배경이 있으셨던 덕분인지 라온님은 학창시절 내내,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생각치도 못한 접근 방식을 활용해 모든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냈고요.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저는 나중에 꼭 함께 창업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그래서 라온님이 군대에 있던 2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했어요. 그리고 스타트업 하자고 집요하게 설득했어요. 결국 전역할 때가 되어서는 저와 함께 창업하기로 결정을 해주셨죠. 당시 저는 멀쩡히 높은 연봉을 받으며 다니던 직장을 무턱대고 때려쳤고요. 어떤 아이템이 있어서 창업을 결정한게 아니었습니다. 다같이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어요.



 엘레강스하게 표현하자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하나씩 MVP를 만들며 시장을 태핑하는 때였죠. 저희는 B2B 대상 마케팅 자동화 솔루션을 만들었고, 세일즈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라온님의 경우 B2C 마케팅 전문가이고 B2B 세일즈 경험이 없으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는 4년이 넘게 B2G, B2B 세일즈 중심의 회사에서 근무하며 합치면 수백억 원 이상 규모가 되는 다양한 사업들을 경험했어요. 리드 발굴부터 계약 그리고 납품 완료까지 모든 라이프사이클을 경험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PoC, 세미나, 콜드메일, 지면 광고, 인터넷 기사 또는 채널광고 같은 전형적인 리드 발굴부터 수행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그 때 라온님은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갑자기 잡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시더니 구인 공고를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메인 타깃으로 생각했던 중소규모 마케팅 회사들을 쭉 줄세웠고 "24시간 당신을 위해 머슴같이 일하는 마케터" 라는 제목과 마치 마케팅 노예를 연상시키게 하는 이력서를 만들더니 지원서를 제출하더라고요. 사장이라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이력서였어요.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나면 면접을 보러갔고 돌아올 때에는 솔루션 구독 계약서를 들고 돌아왔어요.



 머리가 띵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냐"고 여쭤봤을 때 돌아왔던 대답은 "우리가 만드는 솔루션이 운영 비용을 절감하게 해준다는 관점으로 만들어진 제품이기 때문에, 운영 측면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회사들의 구인 공고에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면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조직 내에서 의사 결정권이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이니 팔기에도 용이할 거라고 생각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서 크게 두 가지 관점을 갖게 됐는데요.



 1. 기존의 관계, 관습, 관행같은 것들이 배여 있는 상태에서는 본질을 놓치기 쉽다.

 2. 나의 주력 분야를 "세상"이 아닌 "도구"로 바라봐야만 진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라는 관점이었어요.



 첫번째 관점의 경우 정반합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더욱 크게 가지도록 만들었고, 두번째 관점의 경우 한 가지 분야에만 매몰돼 있었던 시야각을 넓혀 주었어요.



 이때까지 느껴왔던 좋은 리더들의 공통점은 개인의 세계관을 부숴준다는 점이에요. 비즈니스 관점에서 개인의 분야나 부서, 팀이란 결국 하나의 비전을 향하여 달려가기 위해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이요.



 동료들이 끊임없이 본질에 집중하며 비즈니스를 공부하게 만드는 훌륭한 리더들이 언제나 10미터 이내에 앉아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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