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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a Oct 23. 2023

로맨스는 나를 구하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는 남자와의 로맨스가 내 인생을 구할 거라는 환상을 안 믿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도 제인 오스틴 같은 문학이나 고전 영화를 좋아했었고, 여전히 멜로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솔직히 지금도 60년대의 멜로 영화나 유치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면서 펑펑 운다. 평생 봐온 게 만화, 소설, 영화인 만큼 로맨스에 대한 환상이 분명 있었다. 스무 살 무렵에는 내 또래 남자들은 유치하다고 무시하면서 나이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기도 했다. 스스로 훨씬 성숙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었고 나이가 많은 남성이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아마 나처럼 대디 이슈가 있는 소녀들은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 것이다. 어리고 불안정한 여성을 쉽게 이용하려는 늙은 남자들이 세상에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면서 내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었던 게 웃길 뿐이다. 슬프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의존하거나 빠져들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고등학생 때 나는 죽으려고 한강에 간 적이 있었다. 밤이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었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죽을 용기조차 없는 내가 비겁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내 나이보다 적어도 열 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연락처 좀 알려달라고. 한강 공원 근처였고 셔츠 차림이었으니 아마 그 부근의 회사원이었겠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더는 살고 싶지가 않은데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니. 그는 내가 싫다고 해도 안 가고 그럼 메일 주소라도 알려달라며 오랫동안 버텼다. 그 덕에 나는 삶을 한 층 더 증오할 수 있었다. 아마 겉보기에도 어려 보이고 풀 죽어 있으니 내가 만만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날의 나에겐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너무나도 필요했었다. 내가 알아왔던 로맨틱한 이야기 대로라면 나는 그 앞에서 눈물을 흘렸거나, 별 시답지 않은 대화라도 이어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우연히 나타난 그가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빠져서. 내가 나이 많은 남자와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관계에 빠져 있다고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거다. 심지어 그 남자는 끈질기다는 점이 매우 짜증 난다는 것만 빼면 공격적이진 않았고 오히려 상냥한 편이었다. 거칠거나 무서운 인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가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때도 알아차렸던 거다. 나의 연약함을 노출했을 때 그에 대한 답이 내가 꿈꿔왔던 낭만이나 사랑이 아닐 것이라는 걸 직감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겐 주변의 유혹이 많았고, 정신적으로도 훨씬 어리고 불안정했고, 지금처럼 지옥발 페미니스트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취약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살면서 그런 유혹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아무리 힘들 때에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거나 나를 보호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을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었다. 평생 동안 봐 온 온갖 픽션이 내게 세뇌시킨 '나를 지켜주는 남성'에 대한 환상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런 관계는 결국 거부하게 됐다. 로맨틱한 관계 속에 나를 종속시키고, 사랑을 갈구하는 일은 나를 결코 채워주지 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본능적이라고 썼지만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은 책에 대한 글은 아니므로 생략)


사랑을 받는 어린아이로 남는 것은 쉽지만 사랑을 주는 일은, 어떤 사람들은 평생동안 실패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로맨스를 소비하기도 한다. 로맨스의 대부분이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이는 데 여성 독자인 내게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영화 같은 키스가 내 삶에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솔직히 가끔은 그런 환상이 사라져 버린 내 삶은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낭만적인 역할극을 더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낭만으로 덧칠해진 환상이 끝나고 나면 그 후에 거기에 남는 건 뭘까. 그 역할극이 내게 남기는 것은 사랑이 아닌 환멸뿐이다. 서른 살이 다 돼가는 지금 돌이켜봤을 때 10년 간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성장은, 사랑받기를 원하기보다 사랑을 줄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로맨스는 나를 구하지 않는다. 아니 구원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일은 자기 삶을 스스로 마주 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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