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살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주제가 인종차별인데 내게 현실적으로 직접 와닿는 문제라서 더 많이 고민하고 또 여러 책도 읽어보게 됐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종차별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굳이 길을 걸으면서 가끔 마주치는 니하오, 칭챙총 같은 무식하고 단순한 차별 행위에 대해서는 말하진 않을 거다. 그게 괜찮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행위가 실제로 내게 미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 구조 속에, 마음속 깊이에 새겨져서 바뀌지 않을 만한, 더 복잡한 유형의 인종차별이다. 그건 바로 백인이 아시아인을 다른 인종보다 선호하는 경우이다. 겉으로 보면 그게 왜 차별인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차별의 방식은 교묘하고,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이런 경우는 많이 언급되지도 않는다. 흑인 신체의 우월성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영화 <겟아웃>과도 비슷한 맥락인데, 그들은 실제로 본인이 타문화에 매우 열려 있다고 생각하고, 인종차별은 다 옛날 일이라고 여긴다. 아시아 문화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집착도 있다. 아시아 사람만 만나면 본인이 아시아 국가, 문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떠벌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이 말하는 말하는 아시아란 대부분 한중일 동북아시아고 실체 없는 허상의 이미지일 때가 더 많다.
처음에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기 때문에 이게 왜 차별인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굳이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실제로 나는 프랑스에 살면서 노골적인 인종차별보다 이런 유형의 백인들을 더 많이 만나봤다. 물론 단순히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몇몇은 시간이 좀 지나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들은 아시아인을 좋아한다고 하는 동시에 프랑스에 많이 살고 있는 흑인, 아랍계 사람들을 배척한다. 마치 나를 칭찬하기 위해 다른 여성을 까내리는 남자를 보는 기분이다. '프랑스 여자들은 페미니스트인 척 하지만 아랍, 흑인 남자를 선호한다.(무슨 논리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걔들이 와서 프랑스 여자들을 다 차지해 버렸다.'라는 같은 말을 실제로 하는 백인 남자도 있었다. 아시아 사람들은 덜 공격적이라는 스테레오 타입과 페티시가 맞물려 그걸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구실로 사용한다. 아시아인들은 이민 와서 시끄러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얌전하다고 여긴다. 한 번 속내를 드러낸 이들의 흑인, 아랍 사람들을 향한 우월주의는 충격과 공포 수준인데 정작 그게 왜 인종차별인지 조차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아시안 여성이 좋다'라고 하는 백인 남자를 만나면 빨리 도망가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높은 확률로 인종차별주의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론 흑인이나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 페티시와 결합된 교묘한 유형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유형의 차별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은 본인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시안을 선호하고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역사를 돌이켜봐도 가장 무서운 일들은 혐오나 차별에 논리와 이유를 갖다 붙이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이런 비슷한 논리를 공개적으로 발언한 경우가 있었는데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흑인과 이슬람을 혐오하는 것으로 유명한... 현재 이탈리아 총리인 멜로니가 "아시아 이민자들은 비교적 말을 잘 듣고 온순하다. 키가 작고 이상한 음식을 먹는 것만 빼면" 같은 말을 한 적도 있다. 이탈리아 총리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이 의외로 아시아인 이민자에게만 온건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아시안들을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는, 조용하고 저렴한 노동력이라고 여기며, 다른 인종을 혐오하는 핑계로 사용하기도 딱 좋기 때문이다. 더 최악은 이 논리에 동조하는 아시안을 만나는 경우다... 본인이 백인이라고 착각하는 건지 백인들의 타인종 혐오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백인들의 논리에 동조해서 이슬람 혐오를 가진 사람들은 혐오에도 당연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무슬림과 만나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무슬림은 중동에만 있는 게 아니고 전세계에 있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에도 있고 아프리카 국가에도 많지만 그들의 문화, 사회적 배경은 각자 매우 다르다. 하지만 혐오를 하기 위해 혐오하는 사람한테 매번 강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나는 북아프리카와 멀지 않은 남프랑스 지역에 살기 때문에 모로코, 튀니지 출신의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우리가 얼마나 이들을 편견과 무지로 대하고 있었는지를, 정말이지 혐오가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하면 정말 순수하게 한국을 사랑하는 친구들도 많다. 내가 갔던 곳은 모로코의 정말 작은 도시였는데도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들을 적지 않게 만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내 경험상, 한 번도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걸 다른 인종을 깎아내리는 데에 사용하지 않았었다. 자신들이 더 잘 안다고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나와 식민지였던, 핍박받고 차별받아왔던 역사를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내가 이런 방식의 인종차별에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그들은 단순히 인종차별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차별받아왔던 대상들이 찢어져서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기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그들이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조금 어리석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들이 무덤에 들어갈 때쯤 '내가 어쩌면 틀렸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게 내가 그들에게 가질 수 있는 제일 큰 희망일 거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교묘한 논리로 가장한 그 혐오에 지지 않는 거다. 나는 이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단호하게 말한다. 난 그런 식의 차별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나를 네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데에 이용하지 말라고. 그들은 개인으로서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인종의 사람으로 나를 인식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나는 한국인이고 동양인이지만 그게 나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만으로 그들이 나를 싫어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이유만으로 그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면? 그건 애정도 호의도 아니며 그냥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