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폴’은 1976년 일본에서 제작한 것으로 동양방송을 비롯한 국내 방송사에서 수입해 방영한 애니메이션이다. 현실과 마법의 세계를 넘나들며 용감한 소년 폴이 마왕에게 붙잡혀간 니나를 구해낸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폴과 니나지만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팟쿤(찌찌)이다. 팟쿤은 수제 인형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온 영혼이 깃들어 있어 말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뿅망치처럼 생긴 요술봉을 휘둘러 흘러가는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팟쿤의 역할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폴 일행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정지된 시간의 문을 통해 4차원의 세계를 여행하며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를 비롯한 많은 어린이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최근에 그에 대한 근거를 꽤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두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탓이란다. 그런가 하면 상담심리학자 이혜진은 나이 들면서 새로운 경험이나 자극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모두 나름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아쉬움'의 크기가 시간의속도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큰 사람일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낄 것이라는 얘기다. '아쉬움'이란 모자라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이제 막 사랑에 불붙은 청춘남녀에게 시간은 늘 모자랄 수밖에 없다. 흘러가는 시간이 얼마나 아쉽겠는가. 그러니 함께 있는 하루가 한 시간 지나듯 여겨짐은 당연지사다.
일반적으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젊은이보다 반백의 나이에 이른 사람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모래시계는 정해 놓은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호리병 모양의 위쪽에 남아 있는 모래가 더욱 빠르게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호리병 속에 든 모래를 시간으로 바꿔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남아있는 시간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사람일수록 시간이 호리병 아래로 빠르게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욕망이 생겨난다.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을 실현하기란 애당초 가당치 않으니나이 들수록 공상에 빠지는 시간이 많아질 듯하다.
공상이란 실현가능성을 지닌 상상과 달리 실제로 나타날 가망이 전혀 없는 생각을 말한다. 나이 들어 하는 공상이란 앞서 말했듯이 빠르게 달아나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욕망과 관련된 것일 게다. 요즘 들어 나는 공상에 빠질 때가 많다. 예컨대 팟쿤의 요술봉을 내리쳐서 시간을 멈춰 놓고 이상한 나라를 마구마구 여행한다거나, 그 옛날 황진이가 동짓밤의 허리를 베어 이불속에 넣어 두고 싶어 했던 것처럼, 자투리 시간을 쓸어 모아 얼음 틀에 담아서 냉동고에 꽁꽁 얼려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쓰면 좋겠다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며 실없이 해죽거려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