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두 대를 들고 다니는 이유

- 30년 익숙한 삶과 결병하는 연습

by 노란 잠수함

6년 만에 휴대폰을 바꿨다.


물건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 아니라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배터리가 기력이 쇠한 노인처럼 금세 방전되곤 했다.

지나가는 말로 "싸게 바꾸는 방법 없나?" 했더니, 꼼꼼한 사위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며칠 뒤 도착한 장문의 카톡엔 기종별 가격부터 요금제까지 분석표가 빼곡했다. 그 정성이 고마워 얼결에 주문을 넣었고, 이틀 뒤 내 책상엔 낯선 기계가 도착했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데이터를 옮기고, 유심을 갈아 끼우고, 뱅킹 앱을 다시 까느라 자정을 훌쩍 넘겼다. 그간 전화기를 바꾸지 않았던 건, 사실 기계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번거로운 과정이 귀찮아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세팅을 마쳤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책상 위에 전화기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매끈하고 차가운 새 전화기, 그리고 모서리가 닳고 손때가 묵직하게 묻은 옛 전화기.

어제까지 내 분신처럼 굴던 녀석을 하루아침에 책상 구석에 처박아두고 나가려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너무 야멸찬 처사 같았다.

결국 나는 바지 주머니 양쪽에 전화기를 하나씩 찔러 넣고 집을 나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새 전화기가 더 빠르고 선명한데, 손은 자꾸만 옛 전화기로 갔다. 메모장에 적어둔 문구가 생각나서, 손에 익은 자판 감각이 그리워서, 나는 굳이 와이파이를 켜가며 옛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며칠, 아니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는 두 개의 전화기를 품고 다니고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언제나 쉽지 않다.

10년 넘게 탄 차를 폐차하던 날도 그랬다. 폐차장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나오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을 태우고 전국을 누볐던 녀석, 출퇴근길 나의 유일한 말벗이었던 녀석을 고철 덩어리 속에 두고 오는 길은 친구를 버리고 오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물며 기계와의 이별도 이런데, 익숙했던 삶과의 작별은 오죽하겠는가.

말들은 쉽게 한다. "익숙함을 버려야 새로운 것이 온다"라고. 하지만 삶은 무 자르듯 단번에 끊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요즘 내겐 그런 거대한 결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삼십 년 넘게 몸담았던 교직을 이제 내려놓으려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향하던 학교, 아이들의 웅성거림, 분필 가루 날리는 칠판, 그리고 '선생님'이라 불리던 나 자신.


이 거대한 익숙함과 헤어지는 일은 전화기나 자동차를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별일 테다. 아직은 실감 나지 않지만, 막상 그날이 오면 나는 폐차장 앞을 서성이듯 자꾸만 학교 담벼락을 뒤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새 전화기를 쥐고도 옛 전화기를 놓지 못하듯, 은퇴 후의 자유를 쥐고도 치열했던 교단이 문득문득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다. 낯선 곳이 두렵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익숙한 항구에만 머무르는 배는 안전하겠지만, 그것은 배가 만들어진 목적이 아니다. 항구의 안락함에 길들여 바다로 나서길 주저한다면, 배는 결국 녹슬어 고철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녹슬어가는 배가 되기보다, 거친 파도라도 가르는 배가 되고 싶다.

익숙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베일에 싸인 '은퇴 후의 삶'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한 발 내디뎌야 한다. 물론 서툴고, 예기치 못한 일에 당황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방전된 옛 전화기에 의지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과거의 영광이나 익숙함은 이제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둘 때가 되었다.

그래야 내 빈 주머니에 새로운 세상이 들어올 테니까.


나는 결심한다.

내일은, 기어이 새 전화기만 들고 출근하겠다고.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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