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휴대폰을 바꿨다. 물건을 험하게 사용하는 편이 아니라서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배터리가 빨리 닳기는 했지만 심각할 정도도 아니었다. 지난주에 딸과 사위가 내려왔기에 지나는 말로 전화기를 값싸게 바꿀 방법이 있느냐고 했더니 사위가 대뜸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사위의 꼼꼼한 성격을 아는 터라 괜한 말을 했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에 카톡으로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기종에 따른 가격 차이는 물론이고 요금제는 어떤 것이 유리한지, 부가서비스는 몇 개월 이용해야 하는지 등을 상세히 안내해 주었다. 이렇게까지 애를 써서 알아봐 줬는데 아직 쓸만하니 바꾸지 않겠다고 무르면 도리가 아닌 듯싶어서 모델을 선택한 후 주문해 달랬다.
이틀 후, 물건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새것으로 데이터를 옮기고 유심을 바꿔 끼웠다. 필요한 앱을 설치하고 공동 인증서도 모바일뱅킹으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더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그간 전화기를 바꾸지 않은 것도 이런 일들이 귀찮고 번거롭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해보았더니 기본적인 기능은 사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웬만큼 만들어 놓은 듯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하려고 전화기를 챙기려는데 휴대폰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제까지 함께 했던 것을 두고 새것만 들고나가려니 마음이 영 찜찜했다. 육 년 넘게 주머니 속을 들락거린 녀석을 하루아침에 내치는 것은 매정하다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바지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넣어 출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옛 전화기에 손이 더 많이 갔다. 메모장 앱에 기억할 것들을 저장해 두었는데 그 앱은 새 것으로 이동이 되질 않아서 옛 것을 열어 확인해야 했다. 손에 익은 것이라 사용하기 편하기도 하고 와이파이를 이용하니 인터넷 연결도 되고 해서 일주일째 두 대의 전화기를 대동하고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무엇이든 참 힘들다. 10년 넘게 탄 차를 폐차하던 날, 폐차장에 차를 두고 나오면서 자꾸 뒤를 돌아봤다. 처음으로 장만했던 차라서, 가족들과의 추억이 서려 있어서, 출퇴근길을 동행하며 세상 소식을 공유했던 친구 같아서 야멸차게 돌아설 수 없었다. 비단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떠나보내는 일만 애달픈 것은 아니다. 익숙한 삶과의 헤어짐은 더욱 아프다.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것을 택하라고들 하지만 익숙한 것을 무 자르듯 단칼에 잘라내기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익숙한 삶과 결별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삼십 년 넘게 해 온 일을 그만두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전화기나 자동차를 떠나보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서운할 것이다. 아직은 코앞의 일이 아니라서 실감이 나지 않지만, 막상 그날이 오면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새 전화기를 손에 쥐고도 옛 전화기를 떼어내지 못하듯 자주 꺼내 입는 옷처럼 익숙했던 삶이 문득문득 떠오르다 못해 그리워지기까지 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낯선 곳이 두렵다고 멋진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익숙한 세상에만 머물고자 한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익숙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베일에 가려진 미지의 세계를 향해 힘껏 나아가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고 미처 예기치 못한 일이 어디선가 툭 튀어나와 화들짝 놀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옛 전화기에 의지하듯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항구의 편안함에 길들여져 바다로 나가길 주저하는 배가 있다면 쓸모없이 낡아가기만 할 것이다. 둥지에 안주하며 숲을 떠나지 못하는 새가 있다면 산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를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 것 아닌가.
그런 나약한 배도 어리석은 새도 없다. 오늘도 배는 미련 없이 항구를 떠나 거친 파도를 가르며 먼바다로 떠났고, 새들은 둥지를 박차고 거침없이 날아올라 험산 준령을 넘어가고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익숙한 것 하나하나와 결별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바다 저편에 있는 신비한 섬에 닿을 수 있고, 산 너머에 있는 기막힌 호수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