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말고 인생검진

- 번호로 불리는 대기실에서 장자(莊子)를 떠올리다

by 노란 잠수함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검진센터를 찾았다.

접수를 하고 문진표를 작성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물건처럼, 검사 순서에 따라 착착착 떠밀려 갔다.


그날따라 유독 사람이 많았다.

채혈실과 소변 검사실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대기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 화면에 코를 박고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나는 고지식하게도 휴대폰을 탈의실 사물함에 넣어버린 탓에, 멍하니 앉아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주인공 귀도가 어린 아들 조슈아와 함께 수용소에 끌려가던 장면.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똑같은 줄무늬 죄수복을 입어야 했던 그들.


지금 내 눈앞의 풍경이 꼭 그랬다.

사회에서 입던 번듯한 양복도, 개성 넘치는 옷들도 모두 사물함 속에 갇혔다. 시계도, 반지도, 목걸이도 모두 벗어두었다. 남은 것은 우리 몸에 걸쳐진 똑같은 무늬의, 헐렁하고 볼품없는 검진복뿐이었다.

모든 치장과 계급장을 떼고 나란히 앉아 있는 무표정한 사람들.

그 순간, 이곳이 거대한 수용소처럼 느껴졌다.


‘124번, 들어오세요.’

‘208번, 이쪽입니다.’

이름은 사라지고 번호만 남았다.

줄지어 대기하다가 차례가 되면 간호사의 손짓에 따라 이동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수인(囚人)의 행렬 같았다. 나 역시 번호를 놓칠세라 긴장하며 움직였다. 그런데도 마음이 급했는지 상담실로 가야 할 것을 혈압 측정실로 잘못 들어가 멋쩍게 뒷걸음질 쳤다.


가만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검진표를 든 사람들이 곳곳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사회에서는 한자리했을 법한 중년 신사도, 깐깐해 보이는 아주머니도 여기선 똑같이 어리숙한 ‘수검자’일 뿐이었다. 사람에게서 이름과 직함을 떼어내고 번호를 붙이면, 인간은 이토록 작고 헤매는 존재가 되는가 싶었다.


무표정하게 전광판의 번호만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득 장자(莊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하자, 은자 허유는 강물에 귀를 씻으며 단호히 거절했다.

“이름이란, 실(제)의 손님일 뿐이다. (名者 實之賓也)”


그렇다. 이름도, 명예도, 우리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지위도 결국 내 삶의 주인인 ‘육체’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손님을 주인처럼 모시며 아등바등 살아왔을까.


아무리 건강검진으로 몸 구석구석을 살핀다 해도, 결국 그날은 온다.

병원복 한 벌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날. 이름도 소유도 더는 의미를 갖지 못하고, 오직 ‘나’라는 생명 하나만 남는 그날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


뱁새는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는 황하의 물을 다 마시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인 우리는 너무 많은 가지를 차지하려 하고, 너무 많은 물을 마시려다 체하고 만다.


어떻게 살아야 정답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어떻게 살면 안 되는지는 분명해졌다.

잠시 머물다 갈 이름 하나 얻겠다고 목을 뻣뻣이 세우거나, 과욕에 눈이 멀어 소중한 사람을 놓치고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그런 어리석음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번호표가 돌아오는 순서는 너무나 빠르다.

나는 오늘 건강검진 받으러 갔다가, 뜻밖의 ‘인생검진’까지 받고 왔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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