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剝製)된 말, 그 슬픈 침묵에 대하여

- 전하지 못한 진심은 가슴속에서 화석이 된다

by 노란 잠수함

올 장맛비의 기세가 자못 맹렬하다. 기상청은 연일 호우주의보를 발령하며 안전을 당부했다. 정오 무렵, 굵은 빗줄기가 아스팔트를 때리기 시작하더니 하늘은 순식간에 먹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세상을 물로 심판이라도 하려는 듯, 하늘은 미친 듯 억수를 쏟아냈다.


하지만 아무리 사나운 비라도, ‘예보된 비’가 주는 충격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우산을 챙기고 창문을 닫으며 마음의 빗장까지 단단히 걸어 잠그니까. 문제는 인생에는 예보가 없다는 데 있다. 삶의 비극은 언제나 기상청도 없는 오리무중의 시간 속에서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뇌졸중은 오십을 코앞에 둔 아버지를 와르르 무너뜨렸다. 건강만큼은 자신했던, 아버지의 단단했던 삶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오른쪽 손발은 마비됐고, 혀는 굳어 대화가 불가능할 만큼 말이 어눌해졌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보다, 말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더 비참해 보였다. 건강하실 때도 우리 부자의 대화는 인적 드문 시골 국밥집에 손님 찾아들 듯 드물었지만, 발병 이후엔 그마저도 완전히 끊겨버렸다.


막힌 뇌신경은 낯선 언어를 빚어냈다. 아버지는 예전보다 더 자주, 더 간절하게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 애썼다. 입술을 달싹이며 몇 개의 단어를 더듬더듬 꺼내 보려 했지만,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만 맴돌다 언제나 깊은 한숨으로 문장을 닫곤 했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에야 곰곰이 생각했다. 퍼즐처럼 뒤섞인 자음과 모음을 힘겹게 맞춰 내게 들려주려 했던, 그러나 끝내 완성하지 못한 그 말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답을 너무나 싱겁게, 그리고 뒤늦게 찾아내고 말았다.


‘부탁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장남인 내 어깨에 얹어주기 위한 ‘부탁한다’는 말, 긴 병시중으로 고생한 가족들에게 전하고픈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평생 무뚝뚝하게 사느라 한 번도 내게 건네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 그 세 마디가 아버지의 머릿속을 맴돌던 마지막 유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도 내게서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이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부탁한다’는 말에는 “걱정 마세요.”를, ‘미안하다’는 말엔 “괜찮아요.”를, ‘사랑한다’엔 “저도 사랑해요.”라는 말로 답해주길 바라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아버지도, 나도 그 말들을 끝내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세상에는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말이 있고, 반드시 꺼내놓아야 할 말이 있다. 담아야 할 말을 쏟아내거나, 꺼내야 할 말을 묻어두면 반드시 후회가 남는다. 우리 부자는 꺼내야 할 말을 마음속 깊이 묻어둔 탓에, 후회를 넘어 회한(悔恨)을 남긴 인생이 되고 말았다. 언제든 말할 수 있을 거라 자만했고, 말할 수 없는 순간은 도둑처럼 찾아온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사무치는 한(恨)은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새겨지고 말았다.


엊저녁, 한 통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지인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이었다. 지금쯤 빈소 한구석에서 산산이 부서져 있을 그를 생각한다. 나는 말이 가난한 사람이라, 화려한 위로의 언어를 찾지는 못하겠다. 다만 그에게, 내 가슴속에 박제된 채 남은 이 말들을 대신 전해주고 싶다. 늦기 전에,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라도 꼭 소리 내어 말하라고.


“어머니, 걱정 마세요.” “모든 게 괜찮아요.” “그리고, 사랑해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배웅해야 하는 그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말은 입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온기가 돈다.

가슴속에 박제된 말에는, 지금이라도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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