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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잠수함 Sep 01. 2023

‘그냥’ 좋아.

 ‘그냥’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 가지 뜻이 있다. 그중, ‘아무 뜻이나 조건 없이’라는 뜻의 ‘그냥’이란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어떤 관계든 ‘조건’이 들어가게 되면 순수함을 잃게 된. 자식에 대한 사랑에 ‘조건’이 끼어들면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고, 바위처럼 단단함을 자랑하던 우정도 ‘조건’을 내걸면 비스킷만큼이나 부서지기 쉬운 것이 된다. 연인, 부부간의 사랑도 ‘조건’이 관계 속에 똬리를 트는 순간, 사랑인 줄 알았던 것이 실상은 추악한 사욕(私慾)을 채우기 위한 거래였음이 드러나면서 거추장스러운 형식만 남게 된다. 이렇듯 ‘조건’은 순수한 관계를 부수는 쇠망치다.


 무음으로 설정된 휴대전화로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와 있었다. 십 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후배 녀석이었다. 대학 선후배로 연을 맺었지만 한 살 차이로 친구처럼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닿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말이 나온다. “형,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었어.” 월말 결산을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전화한다며 여느 때처럼 장난기 섞인 유쾌한 말투다. 이런저런 서로의 일상을 나눴다.


 참 반가운 말이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그 말. 세월의 더께로 순수함이 오염될 법도 한데 여전히 ‘그냥’으로 내게 다가오는 친구가 참 귀하다. 이참에 숫기 없어서 해보지 못한 고백 한 번 해볼까?


 친구야, 나도 네가 ‘그냥’ 좋아.



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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