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 없는 안부가 그리운 날에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
‘그냥’이란 말.
뜻이 여럿이지만, 이 풀이가 내 마음에 쏙 든다.
어떤 관계든 ‘조건’이 달라붙으면, 순수와 멀어진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에 조건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순간, 그것은 집착으로 변질된다. 바위 같던 우정도 이해타산이라는 요소가 끼어들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둘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순간, 사랑은 바로 사욕(私慾)이 된다. 이렇듯 ‘조건’은 순수한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가장 무거운 쇠망치다.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 알림이 찍혀 있었다. 발신자는 삼십 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대학 후배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기가 무섭게 쾌활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어, 형! 별일 없지?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월말 결산이 끝나 홀가분한 마음이라며, 장난기 섞인 인사를 건네왔다. 특별한 용건 없이 우리는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참 웃었다.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참 반가운 말이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그 말.
세월의 더께만큼 순수함이 오염될 법도 한데, 여전히 ‘그냥’이라는 말로 내게 다가오는 녀석이 새삼 귀하다.
‘그냥’이라는 말속엔 ‘보고 싶다’, ‘그립다’, ‘고맙다’라는 진심들이 따뜻한 빵 속에 든 팥소처럼 달콤하게 숨어 있을 테다.
용건이 있어야만 연락처를 뒤적이는 나를 반성하며, 이참에 쑥스러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 지면을 빌려 슬쩍 건네볼까.
아우야, 나는 네가 ‘그냥’ 좋아. 아무런 대가, 조건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