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수의 시가 늘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유
내 컴퓨터 모니터 가장자리에는 늘 노란 포스트잇 네댓 장이 부적처럼 붙어 있다.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내가 고안해 낸 궁여지책이다. 해야 할 일, 깜빡하기 쉬운 약속들을 적어두면 덜 실수하고 덜 민망하니까. 하지만 이 만능 부적도 내 치명적인 결함 하나만큼은 해결해 주지 못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타고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뇌에서 이름을 저장하는 보존 기간이 유통기한 짧은 우유처럼 턱없이 짧다. 아무리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라도 반년쯤 못 보면 이름은 내 기억 저장소에서 자동 삭제된다.
이런 나 자신이 가끔은 참 밉다.
제자를 만나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정겨운 선생이 되고 싶은데, 현실은 딴판이다. 졸업한 제자가 반갑다며 달려와 안기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어... 그래, 잘 지냈니?" 하며 얼버무릴 때의 그 식은땀이란. 제자들 눈에 내가 얼마나 무심하고 싸늘한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문제는 학교 밖에서도 이어진다.
거리에서 예전 동료를 마주칠까 봐 나는 늘 조마조마하다. 상대는 뒤춤에 감춰둔 꽃을 꺼내듯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며 악수를 청하는데, 나는 그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 뿐 나오지 않아 어정쩡하게 손만 잡는다. 그 민망함이 트라우마가 되어, 요즘은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슬쩍 곁길로 빠져 숨어버리곤 한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도망자가 된 기분이다.
‘이름 석 자 기억 못 해서 이리도 딱하게 살아야 하나.’
그런데 가만 보면, 나만 이름을 잊는 게 아니다. 세상도 내 이름을 잊어간다.
아내는 여전히 나를 ‘오빠’라 부르고, 딸들은 나를 ‘아빠’라는 대명사로만 인식한다. 요양병원의 어머니에겐 나는 그저 ‘아들’이다.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자네’, ‘선생님’, ‘형님’, ‘선배’. 좀 더 친하면 ‘어이’, ‘이 사람아’.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고유한 이름을 부르는 일이 낯선 풍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름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볼 때마다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떠오른다.
내 이름엔 세상을 밝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그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에 무려 쌀 두 가마니 반값을 치르셨다고 했다.
“너, 비싼 이름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
아버지는 그 말을 유언처럼, 입버릇처럼 하셨다. 내게 딸이 둘이나 생겼어도 나를 ‘OO 아비’라 부르지 않고, 중풍으로 쓰러져 발음이 어눌해지셨을 때조차 기어이 내 이름을 또렷하게 부르려 애쓰셨다.
나는 가끔 낯이 뜨거웠다. 내 삶이 과연 쌀 두 가마니 반의 가치를 하고 있는가. 혹시 한 가마니도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자문하며 부끄러워지곤 했다.
요즘은 이름을 감춰야 미덕인 세상이다.
범죄를 피하기 위해, 온라인의 자유를 위해 이름은 복면 뒤로 숨는다. 라디오 DJ들조차 사연 보낸 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휴대폰 뒷번호로 대신한다. 학창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에 엽서를 보내고 DJ가 내 이름을 불러줄까 밤새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던 낭만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찾을 수 있다.
이제 병원 대기실이나 은행 창구에서조차 내 이름 대신 번호가 호출된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 ‘익명’이라는 차가운 배려가 들어섰다.
그런데 며칠 전, 내 이름을 아주 정확하고 또렷하게 불러준 사람이 있었다.
두어 달 전 빌라를 팔고 양도소득세를 신고했는데, 서류가 미비하다는 등기우편을 받은 직후였다. “미제출 시 경찰 통보”라는 살벌한 문구에 놀라 서류를 보냈더니, 며칠 후 세무서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다짜고짜, 그러나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물었다.
“OOO 씨 맞으시죠?”
정말이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타인의 육성으로 듣는 내 이름 석 자였다.
“네, 맞습니다.”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사무적인 몇 마디를 쏟아내고는 전화를 툭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씁쓸한 웃음이 났다.
김춘수 시인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노래했다지.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누군가 내 이름을 정확히 불러준다고 해서, 무조건 그에게 가서 꽃이 되고 싶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이가 불러주는 이름은, 꽃이 되기는커녕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 출처 : Pixabay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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