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강기에서 마주한 우리의 자화상
통영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콘도 객실을 정리하고 나서니, 시계는 이미 퇴실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복도는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고, 네 대나 되는 승강기는 야속하게도 모두 ‘만원(滿員)’ 불을 켠 채 5층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이 하나둘 비상계단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오십견으로 오른팔이 성치 않은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리 짐을 부쳐둘걸’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쯤, 기적처럼 승강기 문이 내 앞에서 열렸다.
안은 이미 콩나물시루였지만, 다행히 만원 경고등은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 같으면 “먼저 가세요” 하며 물러섰겠지만, 그날은 나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뻔뻔하게 캐리어를 들이밀고 간신히 발 디딜 틈을 확보했다.
문이 닫히자 등 뒤로 “어휴, 좁아라...” 하는 나즈막한 탄식이 들려왔다.
아마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욕했을 것이다. ‘고작 5층인데 걸어 내려가지, 굳이 꾸역꾸역 타야 하나.’ 하지만 내 사정을 그들이 알 리 없었다. 나는 애써 그들의 눈총을 외면하며 벽을 보고 섰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내가 타기 전까지는 ‘제발 한 자리만’ 하고 빌었으면서, 막상 내 몸 하나 실을 공간이 확보되자 마음이 돌변했다.
‘제발 더는 서지 말고 1층까지 갔으면.’
그런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구석에 선 사내가 중얼거렸다.
“왜 만원 불이 안 켜지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강기는 4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자 네댓 명의 가족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이미 꽉 찬 내부를 확인하곤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문이 닫히자 승강기 안에는 묘한 안도의 공기가 흘렀다.
“이젠... 안 서겠지?”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나의 몫이 줄어들 것 같으면 본능적으로 발동하는 이기심. 우리는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암묵적인 동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승강기는 3층에서도 멈췄고, “또 서네”라는 짜증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2층으로 향할 때 우리는 ‘이제는 정말 끝이겠지’ 하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속한 승강기는 2층에서 다시 한번 덜컹거렸다.
“아, 2층인데 ...”
누군가가 불만을 토로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순간, 승강기 안은 냉동고처럼 얼어붙었다.
문밖에는 백발의 노파가 휠체어에 앉아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허리 굽은 노인이 커다란 짐 가방을 든 채 서 있었다. 휠체어가 들어올 공간은, 단 한 뼘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부부는 원망의 기색도 없이, 그저 꽉 찬 승강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승강기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문 앞에 남겨둔 채 야멸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다시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쏟아내던 짜증과 안도는 무거운 침묵으로 바뀌어 우리를 짓눌렀다. 그것은 명백한 부끄러움이었다.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서둘러 뿔뿔이 흩어졌다. 그 무거운 침묵에서 1초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은 뒷모습들이었다.
나 역시 고개를 숙인 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닫히는 승강기 문이, 마치 나의 이기심을 가둔 감옥 문처럼 느껴졌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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