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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Jun 10. 2024

요양원에 가셔야죠

나이 든 여자의 남은 삶 이야기 / 세대차이

내가 97세이신 엄마를 집에서 모시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는 표정으로 말하곤 한다.

"어머, 대단하세요. 나중에 복 받으실 거예요."

내가 효녀라는 뜻으로 하는 말들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사실 나는 효심이 그리 깊지는 않다. 다만 엄마에게는 내가 유일한 자식이므로 당연히 나는 엄마를 모셔야 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요양원은 워낙 선입관이 안 좋아서 엄마를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을 뿐이다.


15년 전, 엄마는 복부대동맥 파열로 큰 수술을 했었다. 당시 병원에서는 엄마를 중환자실에서 계속 받아줄 수 없으니 요양원에 몇 달간 맡기라고 했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소개한 요양원들과 동네 가까운 곳에 있는 요양원들을 둘러봤었는데 당시에는 요양원들의 시설이 좋지 않은 때여서 도저히 엄마를 요양원에 보낼 수 없었다.


잠을 자는 방은 대개 6인실이었는데 좁은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야전병원 같았다. 그런 침대에 가냘프고 자그마한 할머니들이 정신을 잃은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마치 시체안치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환자 몸을 눕혀 놓는 장소처럼 보였다. 공동 거실 공간도 너무 좁았다. 요양원 전체가 답답해서 질식할 것 같았다. 결국은 요양원에 못 보내고 담당 의사에게 사정을 한 끝에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한참을 더 있다가 회복실로 옮겨졌었다.


당시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나는 매일 저녁 6시에 엄마한테 가서 한 시간 동안 엄마와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가곤 했었다. 직장에 다니던 때여서 상사에게 눈치가 엄청 보였지만 하루라도 병원에 가는 걸 빠트릴 순 없었다. 저녁 6시가 가까워지면 엄마는 침대에 누워 내가 문을 열고 나타날 때까지 출입문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엄마는 그 당시 일을 말하곤 한다. 하루종일 얼마나 나를 기다렸는지, 당시 내가 입고 다녔던 옷이며, 집에 있는 애들은 애들대로 배가 고파서 나를 기다렸던 얘기들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런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면 엄마는 또 얼마나 목이 빠지게 나를 기다릴까. 


엄마를 요양원에 보낼 수 없는 이유는 돈 문제도 있다. 최하 70만 원은 내가 더 벌어야 요양원 비용을 댈 수 있을 것 같은데, 차라리 직접 엄마를 모시는 게 나한테는 더 수월한 셈이다. 다행히 엄마는 정신이 비교적 맑아서 돌보기가 힘든 건 아니다. 엄마가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면 할 수 없이 요양원에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전까진 요양원에 보내기 싫다.


나 자신도 나중에 요양원에는 가기 싫다. 요즘 요양원은 시설이 좋아서 갈 만하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아파트가 싫은 나는 요양원이 싫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내 욕심인 것 같다.


내가 일하는 키움센터에는 보람일자리에서 온 인력이 세 명 있다. 다들 50대 이상이어서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전부 떠나보냈는데 하나같이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내가 엄마를 집에서 모시고 있다고 하니까 역시 대단하다고 칭찬들을 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요즘 모텔들이 전부 요양원으로 바뀌고 있대요."

신기해서 내가 물었다.

"왜요?"

"인구가 줄어서 그런가, 문을 닫는 모텔들이 많대요. 모텔은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잖아요. 방마다 화장실도 따로 있고 그러니까 요양원으로 개조하기 쉽다는 거죠."

"그렇구나. 나는 그런 요양원들이 답답해서 엄마를 도저히 못 보내겠던데."

"그렇긴 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낼 때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마당이 있는가, 그거 하나만 보고 정했어요. 경기도 쪽에 좀 있더라고요."

"에효, 나도 늙어서 혼자 살기 힘들면 애들한테 얹혀살아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네요."

나의 탄식 같은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죠.~"

"예?"

"요양원에 가셔야죠.~"

"아니...?"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몸이 노쇄해져도 일차적으로는 집에서 해결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요양원은 이차적인 방법이 아니었나? 요양원에 가야 하는 게 이처럼 당연한 건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현상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세대차이인지 모르겠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결혼 후에 부모를 모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따로 살던 부모가 거동이 불편해지고 정신적인 함몰이 시작되면 곧바로 요양원에 보내는 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생각한다. 나는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세대인 것 같다.


그리고 요양원은 더 이상 엄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되었음을 자각했다.


30년 후 만약 내가 죽을 날이 가까워져 있다면 아이들은 60세 언저리에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점점 더 첨단기기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므로 그때의 아이들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그들의 직접적인 돌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바깥일이 거의 없는 나도 엄마에게 묶여 있는 일상이 갑갑한데 어떻게 그때의 아이들을 나한테 잡아 놓겠나.


엄마가 정신이 좀 맑은 편이라 하지만 엄마와 나의 정신적인 교류는 오로지 엄마의 일부 과거사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먼 후일의 아이들과 나 사이의 의사소통은 아이들에게 지루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 것이다.


맞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 나를 의탁해야 하는 게 맞다. 요양원이 싫다면 다른 어디에 의탁할 것인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며칠 전 치매 엄마를 모시고 있던 친구 한 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 갔다 와야 해서 할 수 없이 엄마를 요양원에 맡겼다고 했다. 요양원에 맡기면서 친구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친구의 엄마는 왜 자기 딸이 이렇게 우는지 모르고 친구를 달래더라고 했다.


삶의 끝자락에 가면 나의 정신력은 아주 미약해져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어디서 지내든 반드시 내가 명심하고 싶은 것이 있다. 무욕과 자애로움 두 개만이라도 나의 뇌리에 남아 무의식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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