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가?

매일 쓰기 140일차

by In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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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근무했던 선생님과 안부 전화를 나눴어요.


어떻게 지내세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지만 이상하게 제 이야기만 이어지게 되더라고요.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제 이야기는 제가 요즘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되었지요.




양말 공장을 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발가락 양말을 생산하는 공장이에요.


사실 저도 발가락 양말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 즐겨 찾는 아이템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냥, 말 그대로 부모님께서 하시니까. 그리고 부모님께서 이제 그 일을 계속하시기 힘드니까. 다른 누군가 하기는 힘드니까. 그래서 제가 받아서 하겠다고 한 일이지요.


일에 전망은 없었어요.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었고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발가락 양말이라는 아이템은 말 그대로 무좀, 습진, 아저씨, 부장님 등등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고 제게도 그렇게 다가왔으니까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든 것보다는, 이 일에 미래가 없고 제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 힘들었지요.

그저,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것,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것, 일을 마치고 적어도 학교에 있을 때보다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 그것으로 위안을 얻었어요.

그렇지만 위안을 느끼는 시간의 물리적 양보다는 힘들다는 생각을 느끼는 물리적 양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올해까지만 학교에 있겠다는 말을 하던 날.

몇 번이고 제 마음을 바꾸려던 이사장과 교장을 대면하던 날.

몇 번이고 이어지고 끊어지고 가 반복되던 이야기가 거의 끝을 맞이하던 무렵 둘 중 누군가 했던 그 말에 대한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 하던 사람이 뭐 하려고? 어차피 나가도 가르치는 것 말고는 못할 건데."


그 말이 너무 싫었어요. 모욕감을 느꼈어요. 저 자신에게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교육 현장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공부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어. 좋은 대학을 가면 네가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지."


그렇게 아이들에게 말하면서, 정작 아이들에게 무언가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의 본질을 가르치는 교사는 변할 수 없다는 그 말에서 교육이 마치 고여서 썩는 물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왜 공부했을까요?

변하지 못한다면 부모와 아이들은 왜 공부 때문에 갈등해야 했을까요?


저는 변하고 싶었어요. 바뀌고 싶었어요. 수학이 좋고 교육이 좋지만,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여전히 좋지만, 제가 다른 무엇을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함으로 그들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요.


부모님께서는 오랜 시간 양말 제조업을 하셨어요.

제가 학교에서 처음 무엇을 배우던 그 시점부터 양말을 만들기 시작하셨으니 정말 오랜 시간 공장을 운영하셨지요. 두 분의 노력과 헌신이 우리 가족을 만들었고, 풍요롭지는 않아도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측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의 경제적 여건을 만들게 되었지요.


양말 공장의 규모를 키우시던 부모님께서는 어느 시점에서 공장을 정리하셨어요.

운영이 어렵다기보다는 변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서 어느 정도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고자 하셨지요.


그렇지만, 일을 하던 사람이 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다시 공장을 시작하셨지요.

이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부모님 두 분만 일을 하셔도 되는 규모로.

제조업장이 많지 않은 "발가락 양말"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고, 두 분이서 운영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어요.

워낙 제조업장이 부족한 상품이다 보니 생산하는 항목들을 어렵지 않게 납품할 수 있었지요.


문제는 시간에 따른 사회적 변화였어요.


저렴한 중국산 양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다양한 복합적 요소에 의해서 국내 양말은 저렴한 중국산 양말의 공격적인 가격 경쟁을 이기기 힘들게 되었지요.


조금씩 거래처가 줄었어요.

판매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문이 줄었고, 판매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금이 잘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고민했지요. 저는 포기하지 않으니까요.

문제가 뭘까?


제가 찾은 이유는 이러했어요.


일단 품질의 측면에서 국산양말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에요. 특히 발가락 양말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문제는 가격이에요.

국산양말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도매상과 중간도매상, 소매상을 거쳐서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지요. 때문에 유통마진의 포함률이 높았어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제조업 장인 우리 입장에서 납품하는 금액과 인터넷에 소매가로 판매되는 금액의 차이를 보면 이를 알 수 있게 되지요.


또한 가공이라는 단계에 대한 소비자 이해가 필요했어요.

가공이라는 단계는 양말을 발 모양의 판에 끼워서 고온의 기계에 넣는 과정인데, 이러한 열을 통해서 양말이 틀의 크기로 수축되면서 빳빳하게 펼쳐지는 공정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여기서 생각을 바꿔봤어요.


그럼, 가공을 생략하면 어떻게 될까?


잘 생각해 보면, 저도, 그리고 제가 양말을 선물하는 제 주변의 친구들도 가공하지 않은 양말을 착용하거든요. 그리고 가공 여부의 차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더라고요. 게다가, 가공된 양말과 가공하지 않은 양말 모두를 세탁 후 비교하면 동일한 크기와 질감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즉, 가공이라는 단계가 어떻게 보면 소비자에게 좋아 보이게 만드는 상품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가공하지 않은 양말을 판매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가공을 생략하고, 중간 유통과정을 생략하면 도매상에게 납품하는 금액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양말을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했어요. 그리고 가공하지 않은 양말을 판매하고 있어요. 기계에서 나온 양말을 착용 가능한 최소한의 작업만을 거치고 판매하는 방법이지요. 우리 공장에서 납품한 양말이 소비자에게 평균 2500원(그보다 더 비싼 경우도 많지만 가장 저렴한 경우로 계산했어요.)에 유통되지만 직접 유통하는 양말은 평균 1800원 내외의 가격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초기 유통이라 그런데 유통량이 많아져서 택배비가 저렴하게 된다면 그보다 적은 금액도 가능하게 되겠지요.


문제는 가공하지 않은 양말을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부분이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가격 경쟁력이 아무리 높아도 판매 이력이 부족하다 보니 상품이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부분이지요. 즉, 플랫폼이 보기에는 가격 경쟁력이 있어도 신뢰를 쌓기에는 아직 부족한 이미지가 높다고 보이나 봐요.


물론, 전화 통화에서는 가공을 하지 않은 상품을 판매한다는 부분만 이야기했었지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가공하지 않고 팔아요? 가격 때문에?"


아니요. 저는 가격 때문에, 단순히 내가 많이 팔아서 많은 수익을 만들자는 의도로 판매하는 건 아니에요. 가공한 상품도 준비 중에 있으니까요. 단지, 가공하지 않은 양말을 유통함으로 소비자에게는 가격 선택의 기회를 주고, 이런 모델을 바탕으로 소규모로 양말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어요.


소비자의 관점에서 "어? 처음 상품을 뜯었을 때 빳빳한 느낌은 없지만 어차피 내가 신을 양말인데, 저렴하고 품질 좋은 거 잘 구입한 것 같은데?"라는 인식이 생긴다면. 소비자가 양말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가공비가 포함된 양말"과 "가공비가 포함되지 않은 양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양말이라는 사업분야가 부가가치가 매우 낮은 영역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업 참여자가 고령화되어 있거든요. 마무리 박음질을 하시는 할머니의 경우는 올해 78이시고, 실을 납품하시는 사장님은 올해 74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업 참여자 고령화로 후가공을 하는 업체가 줄어들게 되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가공비용은 더 올라가고 양말의 가격도 역시나 상승하겠지요.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가공하지 않은 양말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게 시장을 살리는 방법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가공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에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자는 의미지요.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하니 그 선생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선생님은 매번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시고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하시는군요."


그 말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맞아요. 생각해 보면, 남들과 같은 방법으로 움직이면 조금 더 편할 수 있는데 꼭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며 살았지요.


학교에 있으면서도 그랬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온라인 교육을 해 본다고 혼자 강의를 촬영하고, 복습, 예습용으로 아이들과 공유하고, 지역의 기관과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수행평가를 위해서 온라인 협업을 가르치고,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나오기 전에 이미 가상 전시회를 아이들과 기획하고 구현하고.

내가 조금 더 수고하면 아이들이 더 많은 교육적 경험을 얻게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때도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조금 편하게 교직을 하지,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계속 만들어 가려하느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선생님의 목소리에 문득,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제 모습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가끔, 그런 말이 떠올라요.


"나는 이렇게 광야에서 외칠 거예요. 그러면 누군가 듣겠지요. 그리고 그 생각이 전달되고, 또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그러다 보면 세상은 조금 바뀌지 않을까요?"


아마 그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왜 그런 길을 가느냐고 물어볼 그 움직임을 계속하다가 보면,

그게 나쁜 길이 아니라는 가정에서 말이지요.


그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저와 함께 걷지 않을까요?

그렇게 걷다가 보면 적어도 무엇인가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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