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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에 기름때가 끼었다.

매일 쓰기 138일차

by In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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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교직을 하던 시기에는,

백묵을 사용했었어요.

아시나요?

흰 분필과 노란 분필, 파란 분필과 붉은 분필을 이용해서 칠판에 글을 쓰면 타닥타닥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흰 가루가 날리는.

열심히 수업을 하면서 판서를 하고, 천으로 된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고 그렇게 수업을 마치면 손에는 하얀 분필 가루가 가득하게 묻어 있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무실 책상에는 항상 로션이 있었지요. 수업을 마치면 손을 씻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서 물백묵이 나왔어요.

예전보다 좋은 분필 샤프도 나왔지요.

분필 샤프에 넣어둔 물백묵으로 판서를 하고, 물이 묻은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면 예전보다는 가루가 덜 날렸지요. 물론, 흐린 날에는 칠판에서 걸래 냄새가 났었지만요.


최근에는 화이트보드를 쓰는 교실이 많아졌어요.

분필을 사용하는 것보다 칠판이 부드러워서 예전과 같은 판서 느낌은 없으나, 그래도 깔끔하게 보이는 느낌이 나쁘지 않지요.


그러던 제가 교직을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분필과 칠판을 상대하며 아이들을 마주했었는데, 항상 일정한 소음을 내면서 작동하는 기계를 보면서 기름을 뿌리고, 드라이버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연장을 가지고 기계를 고치는 엔지니어가 되었지요.


한때는 공돌이라고도 했지만 저는 엔지니어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단순하게 기계를 조립하고, 풀고를 반복하는 단순 작업이 주류를 이룬다면 공돌이가 맞겠지만, 기계 작동의 원리를 고민하고 필요에 따라서 부속을 갈아서, 또는 붙여서, 구부려서 기계가 온전하게 작동하고 완전한 결과물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엔지니어라고 이야기하지요.


사실 저는 아직 엔지니어는 아니에요.

이 일을 오랜 시간 하셨던 아버지께서 진정한 엔지니어지요.


오랜 시간 기계를 관찰하고, 작동 원리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눈에 관찰되지 않는 미세한 움직임을 유추하며 그로 인해서 발생 가능한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문제를 풀어내시지요.


저는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배우며 어떻게 사고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지를 계속 보고 배우게 됩니다.


가끔, 친한 선생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톱 밑에 검게 기름때가 묻은 모습을 보곤 급히 손을 감추곤 해요. 아직은 그런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부끄러운 게 아니더라고요.


완전하게 다른 일에 도전하고 그 일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는 제 모습을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아니,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양말 제조업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추세예요.

제조업장과 함께 연계한 가공 관련 업장도 그렇고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의 세대가 이렇게 가꾸어 둔 것을 아무도 하지 않고 그냥 사라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단순히 공돌이의 일이 아니고 정말 기술인데 말이지요. 어찌 보면 장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1mm가 되지 않는 실의 탄성을 손으로 느끼고, 그보다 얇은 실이 쇳덩어리 사이를 끊어지지 않고 오고 가면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쇠의 마찰, 실의 탄성을 감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장인이 아닐까요?


모두가 좋은 일을 하려 해요.

깔끔한 일을 하려 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누군가가 힘든 일을 감당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우리의 부모님과 어른들 세대에서 말이에요.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손톱 밑에 검은 기름때가 끼었어요. 잘 씻겨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부끄러워하지는 않으려고요. 물론 씻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적어도 숨기지는 않겠다는 것이지요.

이 기술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려고요. 그리고 그 기술이 자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공부도 하려고요. 과거의 것을 더 좋은 것으로 연결해서 발전하는 것. 그렇게 계승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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