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해서 틀에서 벗어나는 방법
“아이고, 말도 말어라.
우리 집안 남자들 전부.
시아버지, 내 아들 둘 다들 걱정에 걱정을 더하고 얼마나 부정적인지, 근데 신기하게 내 남편만 딱 아니야. 내 시누부터 다들 그런데 내 남편만 딱 아니야. “
오랜만에 만난 은사님의 말이다.
교사를 하다가 제조업을 하게 되면서 힘든 것은, 일의 강도가 힘든 것이 아니라 이 일을 부모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걱정에 걱정을 더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며,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는 스타일.
문제는 풀어내면 된다는 내 방식과 항상 충돌이 발생하고, 문제를 해결해도 그건 내가 운이 좋은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고 넘어가는 그 관점이 힘든 부분이다.
교직 첫 해에 알게 된, 내 교직의 방향이 되셨던 선생님을 은사님으로 모시면서, 이제 더 이상 교직에 있지 않음에도 명절이나 복날과 같이 특별한 날에는 종종 만나서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며 밀린 수다를 풀어낸다.
그러던 중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부정적 인식이 많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사실, 나만 가지고 있는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동료 선생님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부모님이 부정적이고, 근심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명절에 처가에 갔을 때 일이다.
장인께서 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들으셔서 일전에 수신율이 좋은 라디오를 하나 드렸는데, 집에 처음 보는 미니 라디오가 있는 것이다.
뭔가 싶어 여쭤보니 기존에 받은 라디오가 수신이 잘 되지 않아서 하나 구입했는데, 두 번 틀어보고는 라디오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름 오디오 업계에서 오랜 시간 인지도를 쌓은 브랜드인데 말이다.
고장 여부를 알아보려 전원을 켜 볼까 하니,
“할 필요 없다. 그거 망가진 거다.”
라며 단정하시고,
”그럼 제가 서비스센터 찾아서 수리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
라고 이야기하니, 가도 못 고친다고 이야기하시고,
요즘은 뭐 사도 다 그렇다며 세상 모든 물건의 품질이 떨어졌다고 라디오 살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펴볼 기회는 줬으면 하는데, 역시나 건들지도 못하게 하시는 건 뭐란 말인가?
그러던 중 야구에 집중하시는 사이에 다른 방에 라디오를 몰래 들고 가서 기기를 살펴봤다.
원인은 배터리 부족.
건전지를 연결하지 않고, 어뎁터를 연결하니 라디오는 쌩쌩하게 잘 나오는 것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고집은 어쩌면 무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무지로 나온 고집은 불신과 부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학창 시절 그런 경험이 있다.
글 쓰는 것, 책 읽는 것은 좋아해도 국어 점수는 형편없었다.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작가의 관점에 공감하기 힘들었고, 왜 그 작품을 그런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건 그냥 문제집에서 나온 풀이의 일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를 꼼꼼하게 읽고 내 나름의 답을 표기해도 오답인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그런 오답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 과목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고, 나중에는 그 과목이 싫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뭐, 대한민국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수학 때문에”라는 병처럼 말이다.
과목을 싫어하다 보니 한 때는 작가라는 사람들을 그럴듯한 단어의 나열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까지 들었고, 아직도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 언어를 나열하는 사람은 불신하는 경향이 생겼다. 문제는 그런 불신이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인식하는 문제가 내 세상을 좁게 만든다면 그건 단순히 그러려니에 머물러야 할 정도가 아닌 게 되는 것이다. 내 세상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고쳐야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언어를 그럴듯하게 표현하도록 학습된 경우가 많은데, 사람을 미워해야 하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언어를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상황에 학습된 사람들은 내 주변의 몇몇, 내가 만난 몇몇에게만 있는 부분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부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암묵적으로 나도 모르게 말이다.
예를 들어서.
건강 프로그램을 하는 방송을 보면, 건강 관리의 중요성, 이런 부분의 문제점이 있을 경우 나타나는 현상, 관리를 위한 운동법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슬쩍 어떤 영양소를 먹어야 한다고 끼워팔기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현혹되고,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채널을 돌리면 근처 홈쇼핑 프로그램에서 지금 건강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그 성분이 함유된 영양제를 판매하고 있다. 당연히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 건강프로에서 다루는 그러한 증상이 지금 내가 경험하는 증상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하고, 눈이 침침하고, 몸이 나른하며, 붓기가 있는 것 같고, 등등의 증상 말이다.
그렇지만.
제약회사가 방송국에 광고비를 투자하고, 그 광고비용을 이용해서 건강 프로그램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통하여 영양제의 필요성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하며, 그에 설득된 사람들이 약을 찾을 때, 홈쇼핑에서 “여기요”하면서 광고를 한다는 것을 과연 몇이나 알고 있을까?
무지함이 죄는 아니지만.
무지함 때문에 우리는 힘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런 무지함이 가족력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생물학적, 유전학적 요인도 발생 할 수 있지만, 가족력은 어느 정도 생활이 공유되는 사람들에게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가족이라는 구성으로 함께 살다가 보니,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취향을 갖게 되고, 비슷한 생활 패턴과 비슷한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아무래도 비슷한 질병에 노출되거나 생물학적으로 비슷한 강점과 약점이 발생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독을 주고 싶겠는가?
그렇지만, 부모의 무지는 자식에게 독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사실 인간은 실패를 통해서, 그리고 그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통해서 더욱 성장하고 견고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부모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내 자녀가 내 아이가 실패하는 경험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실패의 가능성을 “0”에 가깝게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가운데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 처음 실패하는 경험에서 아이들은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좋은 의도지만, 본의 아니게 독을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무지함이 그런 결과를 가지고 온다.
이런 관점에서 부모의 부정적 성향. 근심과 걱정을 이어가는 성향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내 가정이, 내 아이가 실패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저도 모르게 부정적 성향을 만들고, 그런 고민이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부정적 성향을 전달하는 것이다.
“저 이번 시험에서 100점 맞았어요!”
그 말에 칭찬하면 되는데, 혹시나 이후의 실패로 아이가 크게 좌절할까 염려하는 부모 대부분은
“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의도가 나쁘게 전달된다.
가정 폭력을 자주 하는 부모는 자신 또한 그런 과거를 겪은 사례가 많다. 때문에, 자녀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전달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녀에게도 폭력을 행하거나, 또는 극단적으로 무관심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정도로 관여하고, 어느 선에서 훈육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치,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면 경계를 모르고 분노가 폭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며, 부모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건 단순히 나이 먹음에서, 생물학적으로 늙어가는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며, 부모가 되는 과정은 깨달음과 생각,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의 누적에 따라서 나타나는 결과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부모의 무기력을 보고, 나 또한 무기력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나는 그런 무기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고 시도해야 하며,
부모의 부정적 인식을 보며, 나 또한 그런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향으로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며,
부모의 고민을 보며, 고민의 필요성과 깊이에 대한 통찰이 병행되어 내 삶에 적절한 수용과 어느 정도의 무시의 기준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그런 통찰이.
암묵적으로 내게 있는 가족력의 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어쩌면 그런 통찰 덕분에 내 삶은 적어도 이전 세대의 삶보다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일에 대해 걱정하면서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신병자와 같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고 한다.
더 좋은 미래를 꿈꾸고,
행복한 내일을 희망한다면.
오늘 나는 적어도 어제보다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