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에는 스무 살이 되고 나면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 성인이 된 이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이나 생활 패턴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갖가지 제약들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에 생긴 반작용과 같은 것일 뿐 결코 우리라는 사람 자체가 급격히 변화하거나 성장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사고 방식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이제는 어른'이라는 허상에 취해 마구잡이로 어른의 흉내를 내고 다녔던 시기를 우리는 모두 경험해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게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실 19살의 생각이나 20살의 생각이나 뭐 그렇게 큰 차이가 있겠어. 당장은 어린 아이의 사고 방식과 성인이라는 대외적 취급 사이 다소간의 부조화가 존재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는 시기가 비단 20대 초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이 문제가 조금은 심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해를 넘길 때마다 나이는 한 살씩 먹어가고, 이제는 실없는 소리를 하거나 철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경망한 어른이라는 힐난을 피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대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대체 우리는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언젠가 될 수 있기는 한 걸까? 응? 나 이미 어른이라고? ⋯정말? 내가?
아무도 날 막지 못해, <스물>
백수 치호, 재수생 동우, 대학생 경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 세 사람이지만, 그들의 우정은 여전히 끈끈하기만 하다.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함께한 스무 살 동갑내기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청춘일기.
인생에 있어 스무 살만큼 혼돈으로 가득 찬 시기가 또 있을까. 매일같이 등하굣길을 오가던 고등학생 시절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어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엄청난 자유와 책임이 갑작스레 한꺼번에 밀려오는 바람에 조금은 당혹스러워했던 기억. 아마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응? 아니라고? 하긴, 사실 당혹스러워할 틈 같은 게 어디 있어. 마음껏 즐기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스무 살이란 그런 거지. 밤새 술을 마시고 자유롭게 놀러 다녀도 누구 하나 날 막을 수 없는걸.
그러한 스무 살 무렵의 치기 어린 일상을 담아낸 영화가 바로 <스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갑자기 주어진 막대한 자유를 차마 감당할 수 없어 다소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청춘을 불태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세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한없이 미숙하고 어렸던 우리의 스무 살 역시 저렇게 한심하고 꼴사나웠나 하는 부끄러움에 잠겨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고, 이불을 자꾸만 발로 뻥뻥 차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만, 아무렴 뭐 어때. 스무 살이잖아. 그때가 아니면 언제 또 그렇게 청춘을 즐겨보겠어.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더라, <미성년>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 주리와 윤아. 두 사람은 주리의 아빠 대원과 윤아의 엄마 미희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 싶은 주리와 어른들 일에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은 윤아. 두 가족에게는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이와 성숙함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 법이다. '애늙은이'라는 비아냥을 들을지언정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달관한 듯 조숙한 10대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언제쯤 철이 들 거냐는 주변인들의 잔소리를 달고 사는 중장년의 '어른이' 또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네 인생에 '이 나이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정답이라는 게 정해져 있기야 하겠냐만,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언제까지나 마냥 외면하고 살 수만은 또 없는 노릇이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굴어야지. 안 그러면 결국 내 손해인데 뭐 어떡해.
<미성년>은 우리의 나이가 어른스러움 내지는 성숙함의 척도 역할을 항상 정확하게 수행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열심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철부지 어른들의 뒷수습을 위해 이리저리 발로 뛰거나, 어른들의 치부를 모르는 척 눈감아주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주인공 '주리'와 '윤아'의 고군분투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진정한 어른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공통된 의문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사실 어른에 대한 정의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전제에는 모두가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만 먹는다고 전부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어른이란 건 의외로 별거 없는 게 아닐까? <완벽한 타인>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친구들. 저녁 식사 시간 동안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전화, 메시지, 이메일 알림이 울릴 때마다 모든 내용을 함께 공유하는 위험천만한 게임을 시작한다.
사실 어른이라는 개념은 그저 허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변하지 않는 서투른 내면과 어른이라는 대외적 취급 사이 발생하는 괴리감을 평생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저 미숙함을 감추는 어른 행세를 하는 데에만 점차 능숙해질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이 평생을 이러한 괴리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로 그러한지 아닌지의 여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각들이 필자에게 근거 없는 안도감과 위로를 조금이나마 안겨준다는 것이다. 나만 이 세상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이다.
철없던 시절은 모두 과거의 뒤안길로 묻어버린 채 어엿한 어른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파고들어보면 사실은 여전히 한없이 어리숙한 내면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회 내에서의사, 변호사, 부모와 같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며 언뜻 완벽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철딱서니 없는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낸 <완벽한 타인>의 주요 인물들 처럼 말이다. 그래, 어쩌겠어. 어른이 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어른 행세라도 열심히 하면서 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