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생 동안 수없이 많은 순간들을 인지하고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사실을 평소에 굳이 의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서도 말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바다에 비유해본다면, 어떠한 대상을 올바르게 인지하거나 기억하는 일은 마치 파도와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어떠한 의식이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해낼 수 있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삶 전체의 일부로서 지극히 꾸준하고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련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언젠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처럼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만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더 이상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지금까지와 같이 쉽게 인지하거나 기억할 수 없게 된다면? 바람이 없는 바다는 호수에 불과하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파도가 멎는 동시에 나의 삶은 더 이상 바다가 아닌 다른 형태의 무언가로 변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치매'라는 질환이 우리에게 유달리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놀이로 치매를 예방한다, 한국 에자이의 새로운 시도
최근의 치매 관리는 증상의 완화와 같은 사후 처방보다는 사전에 진행되는 예방 및 치료에 그주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극적인 변화가 우리 곁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이 확실시되고 있는 현시점에 걸맞은 이상적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경도인지장애 단계서부터 적극 인지훈련을 시행할 경우, 치매로 진행되는 상황을 대부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하니 실로 예의 주시해야 하는 분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근래에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형태의 인지훈련 및 치료 프로그램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한국 에자이가 보이고 있는 진취적 행보에 한번 주의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겠다.
현재 한국 에자이가 일부 복지관과 치매안심센터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시범사업 중 하나인 '씽큐업'은 태블릿 기반의 디지털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다. 참여자가 터치스크린을 활용하여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각종 퀴즈 및 퍼즐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테스트 결과를 직접 확인하며 개인에게 적합한 학습 과정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방식이다. 치매 예방과 중재가 필요한 개인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비약물적 솔루션의 실효성을 확대하는 것이 본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지향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누구나 놀이처럼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가장 주요한 특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장 반응은 어떤데?
최근 양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 보조자로 활동하며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상대적으로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인 고령의 참가자들이 많았던 만큼 진행 초반에는 다소간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태블릿을 활용하여 간단하게 진행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된 프로그램인 만큼 이내 터치스크린 사용법을 익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진행 흐름에 원활히 적응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개인에게 할당된 문제나 퍼즐을 해결하는 과정으로부터 어떠한 성취감과 재미를 느낀 일부 참여자들이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다음 문제를 풀어 나가는 등 보다 능동적인 참여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치매 예방 프로그램' 내지는 '인지훈련'이라는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참여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권태감이나 의무감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이처럼 자연스럽게 참여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해당 프로그램이 이루어낸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자리를 빌려 본 프로그램의 진행 보조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치매 예방 프로그램의 새로운 활로를 직접 목격하고, 그 가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한국 에자이와 한국사회공헌협회 PLUSV 팀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모두가 영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 걸음
이대로 끝내기는 조금 아쉬우니 평소처럼 영화 이야기도 좀 해보려고 한다. 전국 최초의 '치매 친화 영화관'을 표방하며 2021년부터 운영되었던 인천 미림극장의 '가치함께 시네마'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극장 곳곳에 치매 친화적 안내문을 부착하는 것은 물론, 치매 환자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영화관의 바닥, 음향, 조명 등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등 치매 환자들에게 편안한 영화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된 영화 상영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평소 치매 환자를 돌보거나 보호하는 데 여력을 쏟느라 개인의 여가 시간을 온전히 보장받는 것이 어려웠던 보호자들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가히 찬사를 받아 마땅한 프로젝트라고 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가치함께 시네마'는 지난 2022년 12월 진행되었던 고별 상영회를 마지막으로 현재는 더 이상 운영을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어온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던 치매 환자 및 보호자들의 문화 생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켜준 고마운 프로젝트가 이토록 조용한 관심 속에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 관람을 비롯한 전반적인 문화 생활이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데도 말이다. 언젠가 '가치함께 시네마'가 더욱 따뜻한 세간의 관심과 함께 돌아오는 날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