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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서우 Apr 10. 2023

사라지지 않는 한 살아진다

계획했던 바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인 우리네 인생에 지루할 틈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싶겠냐만은, 의외로 삶의 권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우리의 곁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발자국을 꾹꾹 남기며 열심히 걸어왔던 나의 길이 정말로 나의 길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어쩌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에게 맞지 않는 길을 너무나도 많이 지나쳐온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 더 이상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내 인생의 경로 설정을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는 도전 의식 내지는 강박. 이러한 생각들이 하나 둘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 그때는 지금까지의 삶을 곰곰이 반추해본 뒤 진정한 '나의 인생'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 과감히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김성환 감독의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는 약 20년간 꾸려온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찰에 들어가 불교에 귀의하고자 하는 중년의 남성, 지지부진한 영화 제작으로 인해 모텔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는 영화 프로듀서,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10대 여학생 등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자신을 정의하고 지탱해왔던 그들의 인생에 일종의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의 인생관을 나침반 삼아 앞으로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작품이다.


 문제는 그동안 걸어온 길에 과감히 작별 인사를 건네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 나선 이들의 여정이 애초에 계획했던 바와 같이 마냥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불교에 귀의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던 본작의 주인공 '성민'은 나이 제한, 가족과의 관계 정리 등을 이유로 사찰로부터 출가를 거부당하고, 어려운 살림을 끌어 모아 영화 제작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영화 프로듀서 '진우'는 투자사와 감독 사이 갈등을 조율하지 못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는 등 야심 찬 의지로부터 출발했던 그들의 도전은 이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인생이라는 게 계획한 그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자 나름의 소중한 가치들을 포기하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 과감히 뛰어든 이들에게는 이처럼 익숙한 사실조차 매우 가혹한 현실로 다가오는 법이다.


 모든 의지를 내려놓기만 하면 손쉽게 택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상이라는 선택지를 두고 굳이 힘든 길을 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거나, 이러한 번뇌에 휩싸일 바에는 차라리 삶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과 싸우는 듯 묘사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과연 삶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성격의 고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출가합니다>는 비록 삶이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삶 그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찰로부터 두 번이나 출가를 거절당했지만 결국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이 된 '성민'이나, 먼 길을 돌고 돌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화를 제작해낸 '진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상치 못한 좌절이 우리네 삶이 가진 굴곡을 험준하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삶 그 자체를 망가뜨릴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삶에 때로는 좌절을 겪고, 그 좌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당장은 너무나 힘들고 불합리하게 느껴질지라도, 계속해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삶의 행복이라는 것 또한 불행이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예기치 못한 순간 불현듯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 출가합니다>가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료하다. 삶의 행복을 쫓아 떠난 여정이 몇 번의 좌절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절대 삶 자체에 회의를 가지지 말 것.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지니까.


※ 본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를 통해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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