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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서우 Mar 07. 2024

서정적인 두려움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개인적으로 ‘서정(抒情)’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풀 서(抒)’ 자에 ‘뜻 정(情)’ 자가 결합하여 생겨난 ‘서정’이라는 단어는 ‘뜻을 풀다’, 나아가서는 ‘안에 있는 정서를 밖으로 풀어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보다 직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인상을 주는 단어는 결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해 본다면 ‘서정’은 꽤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는 단어다. 우리가 삶 속에서 행하는 대부분의 행위가 곧 우리의 뜻을 밖으로 풀어내는 과정의 일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흔히 한 편의 멋진 시를 읽거나, 감상적인 멜로디의 음악을 듣거나 할 때 ‘이것 참 서정적이다’라는 표현을 곧잘 사용하곤 하지만, 우리의 정서가 담긴 행위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이라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든지 ‘서정적이다’라는 수식어와 충분히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뜻 ‘서정’이라는 단어와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듯한 ‘호러 픽션’ 역시 그것을 접하는 이들로 하여금 서정적이라는 인상을 자아낼 수 있을까? 브라이언 에븐슨의 소설집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그렇다’라고 이야기한다.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를 구성하고 있는 22개의 단편들은 우리의 현실 너머에 있는 상상적 존재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의 공포 심리를 적절히 자극하는 동시에, 꽤나 신선한 종류의 두려움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두려움의 대상이 결코 명료한 방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독자들에 의해 자연스레 유령과 같은 영적 존재나 각종 설화 속에 등장하는 괴생명체 등으로 치환되지만, 이야기는 독자들이 과연 그들의 존재를 알맞게 상상한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끝내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곧 인간의 공포 심리가 본질적으로 미지의 영역을 향한 무지에 기인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생겨난 공포 심리는 우리의 상상력에 의해 더욱 커다란 두려움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사실을 아주 영리하게 활용한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려움의 정체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짧은 이야기들을 불분명하게 마무리하는 방식이 혹자에게는 조금 불편한 형태로 다가올 여지도 있다. ‘호러 픽션’이라는 대외적 타이틀이 제공하는 기대치에 비해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은 다소 시시하거나 맥빠지는 요소처럼 작동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호한 이야기가 남기는 찝찝함에 기생하여 자라난 공포는 우리의 일상적 영역에 더욱 효과적으로 침투하기 마련이다. 브라이언 에븐슨은 무지와 상상에 근거한 인류의 보편적 공포 심리를 정확히 포착한 뒤,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를 통해 그 정서를 상당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우리는 그가 포착한 두려움의 정서에 ‘삼켜진 자’가 되어, 우리를 위해 쓰여진 노래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가련한 처지가 되었다. 이보다 무섭고 감각적인 서정이 또 어디에 있을까.


※ 본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를 통해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9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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