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4에 다녀오다
한 해를 돌이켜 보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올해는 극장에서 훌륭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참 많이 마주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해에 개봉했지만 올해 1월에서야 부랴부랴 관람했던 <블루 자이언트>,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짙은 여운을 남기고 간 <로봇 드림>,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인사이드 아웃 2>, 재개봉 소식과 함께 다시 한번 극장으로 돌아온 <러빙 빈센트>, 그리고 최근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와일드 로봇>까지.
훌륭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지금보다 더욱 다양한 작품들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극장에서의 애니메이션 상영은 다소간 제한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따름이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4에 방문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독립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 흔치 않기에, 아무쪼록 몰입감 충만한 환경에서 좋은 작품들과 새로이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현장을 찾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상영작들을 직접 만나 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열 편 정도의 작품을 관람하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젊은 감독들의 뛰어난 기량 내지는 거대한 야심을 은근슬쩍 엿볼 수 있는 단편들로 구성되었던 ‘새벽비행’ 섹션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하나같이 연출자의 개성이 적절히 녹아 있는 출중한 작품이었던 것은 물론, 간혹 목격되는 투박함이나 진부함마저도 세심한 연출 과정을 거쳐 하나의 매력으로서 승화되며 관객들에게 적잖은 수준의 감흥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덕분에 과거 <인디애니박스: 셀마의 단백질 커피>, <생각보다 맑은> 등의 작품을 접하며 국내 인디 애니메이션이 지니고 있는 매력에 푹 빠졌던 기억, 그리고 그로 인해 한때는 독립애니메이션 작품들을 꽤 적극적으로 탐닉하곤 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망한 일상에 치여 미처 자각하지도 못한 채 그 즐거움을 잠시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아쉽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라도 다시 훌륭한 국내 작품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정말이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올해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이례적인 수준의 운영 지원 예산 삭감으로 인해 존폐 위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일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이영차’라는 공식 슬로건과 함께 야심 차게 출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성원 아래 올해로 벌써 20년차를 맞이한 행사임에도 그 존폐 여부를 걱정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마치 국내 애니메이션업계의 혹독한 현실을 일정 부분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아 여러모로 씁쓸한 감정이 들 따름이다.
부디 서울인디애니페스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내, 나아가 아시아 독립애니메이션계의 훌륭한 자부심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며, 내년에 다시 찾아올 반가운 재회를 조심스레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