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2021)
테세우스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전시해 둔 배는 언젠가 썩어서 형체를 잃는다. 형체가 무너지기 전에 조각들을 교체해 준다면 배의 형체는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유지된 형태가 테세우스의 배를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의 몸은 1초에 380만 개의 세포를 교체한다. 지금 나를 구성하는 세포가 모두 사라지기까지 8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세 달 뒤의 나는 형체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형체가 담고 있는 것도 똑같아야 할까?
유스케는 버티는 것에 몰두한다.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딸의 죽음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보존을 차에 동기화한다. 그래서 아내가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갑자기 눈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아내가 운전대를 잡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동시에 아내의 외도를 묵인한다. 그에게는 그렇게라도 버티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버팀목이었던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버텨냄은 한계에 봉착한다. 그리고 영화는 유스케가 운전하는 차가 나아가는 모습을 길게 보여준다. 마치 이 길의 끝에 유스케의 형체를 무너뜨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유스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사실 알고 있더라도 피할 수 없다는 듯이.
이 영화에게 유스케의 차가 나아가는 일은 중요해 보인다. 종국에는 미사키가 그 차를 운전한다. 미사키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한국어를 사용하며, 유나가 키우던 강아지를 태우고 차를 운전한다. 빨간 차는 모든 것이 바뀐 채로 나아간다 오토의 공허한 목소리만 가득했던 빨간 차가 자신의 세포를 대부분 바꾸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유스케는 매번 의도치 않게 세포를 바꾸게 된다. 아내의 죽음 외에도, 연극제의 정책 때문에 억지로 운전기사를 고용했고, 수화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하다가 혼나고, 주연 배우의 하차 때문에 바냐 역을 다시 마주한다. 그래서 소냐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바냐에게 일단 살아가자고 말한 듯하다. 살아가다 보면 80일은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니까.
마이 카는 테세우스의 배가 그렇듯 필연적으로 형체를 잃는다. 우리는 그걸 적당히 보수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형체가 담고 있는 본질 또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되뇌어야 한다. 지나간 자신에게 집착하는 건 미련한 일이고, 더 이상 미련함이 덕목이 되는 시절은 오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