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급한 선수 Oct 30. 2023

사랑 그 자체가 이유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언가를 숨길 때 쓰기 좋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플라워 킬링 문> (2023)


 백인이 인디언을 약탈하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인디언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디언을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오히려 자연물에 노동을 투여해서 자신의 소유물로 만드는 신성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크는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의 자연은 주인 없이 나뒹구는 덩어리쯤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다른 인간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정도를 남기지 않거나, 다 쓰지 못하고 썩어버릴 정도로 축적해 버리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노동은 소유를 발생시키는 유일한 원천이며, 권리의 근원이다. 여기까지가 노동의 신성함 1이다.


 노동의 신성함 2는 베버의 설명을 따르면 좋겠다. 개신교 포문을 연 사람으로 불리는 칼뱅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주장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구원예정과 직업소명이라 말할 수 있다. 죽어서 천국에 갈지 말지는 이미 신이 다 결정해 놓은 바이다. 우리가 뭘 하더라도 별 소용이 없다. 그 사실을 통보받는 방법이 직업적 성공이라는 게 칼뱅이 하는 주장의 요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이 신성하다고 생각했고, 돈을 아끼기 시작해서 거대 자본이 형성되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탄생한 것이 자본주의.


 백인들은 노동을 통해 벌어가는 것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장의사에게 너무 비싼 값을 받아간다며 따지는 장면에서 장의사는 인디언은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인디언을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어니스트도 포함되는 말일 터이다. 하지만 어니스트도 억울한 것이 어니스트는 고혈을 빨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협박과 살인 교사는 기본이고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불사하고 있는데 인디언과 같은 취급이라니 꽤나 불쾌할 법하다. 어니스트는 명백히 자연물에 노동을 투여해서 자신의 소유, 아니 가족의 소유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이게 신성한 노동이 아니면 무어던가?




 그렇다. 모든 것은 가족을 위한 일이다. 어니스트는 돈을 보고 결혼하는 다른 백인 남자들과는 달리, 몰리(릴리 글래드스톤)를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다. 물론 진정제랍시고 알 수 없는 약물을 주사하긴 했지만, 그것도 다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몰리를 대신해서 몰리의 재산을 위협하는 나머지 자매들과 그 남편들을 친히 다 제거하지 않았는가? 어니스트가 아니었다면 가족의 재산은 반의 반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어니스트 일가에게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한 몰리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나에게 뭘 줬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 상황에서 저거 말고 할 말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그 지경까지도 어니스트는 몰리를 사랑한다고,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래서 자신은 모든 죄를 고백하고 깨끗한 영혼을 얻었다고 씨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몰리를 처음 만난 순간에도 가진 거라곤 주둥이 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여전해도 너무 여전하다. 아니면 고작 한 번 몰리에게 주사할 약물을 반쯤 나눠서 술에 타 마신 걸로 죄가 다 덜어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작 그 정도의 사람일 뿐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 모든 사랑은 대부분 동경이었거나,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거나,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함이었다. 왜 좋냐는 질문에는 항상 그냥이라고 대답했지만, 사랑 그 자체가 이유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몰리는 어니스트가 자신의 돈을 보고 접근한 걸 알면서도 허락했다. 몰리는 자신이 가진 부가 단지 기회에게 선택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백인의 생각처럼 몰리는 자연과 같은 존재일까?


 그녀들도 내 의도가 뻔히 보였을 텐데도 왜 허락했던 것일까?




 킹, 그러니까 빌, 혹은 윌리엄 헤일(로버트 드 니로)은 영화에서 가장 신을 많이 찾는 사람이다. 독실한 프리메이슨이랍시고 성인이 다 된 조카의 엉덩이를 시원하게 매질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을 정말 많이 찾는다. 심지어 어니스트는 가족 타령에 세뇌되어 빌의 명령을 열성적으로 따른다. 그게 매의 효과인지, 아니면 가족의 효과인지, 사실은 매와 가족은 다른 게 아니었는지 알 수 없다. 빌은 말이 너무 많다. 보통 마피아 게임에서 말이 제일 많은 사람은 마피아일 확률이 높다.


  말은 만악의 근원이다. 말은 실질을 다 담을 수도 없거니와, 얼마 담기지 않은 실질마저 남의 귀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 흘리고 만다. 그래서 스님들이 묵언수행을 하나보다! 노자도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라 했다. 도가의 노자가 도라고 ... 도가 아니라고 ... 아유 어지러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