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헤어미스트를 딱 한 번 썼다.
분명 기대하며 고른 건데, 막상 뿌려보니 생각했던 향은 아니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좋다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언젠간 쓰겠지’ 하며 회사 화장실 사물함 한편에 올려두었었다.
오늘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한번 뿌려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고 병을 잡은 순간에 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짧은 소리와 함께 유리병이 깨졌고, 방 안에는 그 향이 한꺼번에 퍼졌다. 평소라면 짜증부터 났을 텐데, 이상하게도 먼저 든 감정은 속상함이었다. 한 번밖에 안 쓴 물건이 망가졌다는 아까움, 그리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는 작은 미련 같은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에 맡은 향은 처음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 이런 향이었구나’ 하고 다시 느끼게 됐다. 그제야 이 향을 왜 망설였는지, 왜 마음에 확 와닿지 않았는지도 또렷해졌다. 애매한 호감, 애매한 거리. 좋아하지도, 완전히 싫어하지도 않았던 것.
유리 조각을 치우면서 속상했고 병을 깨뜨린 사실을 회사 친구에게 전하자 긍정회로를 돌리라는 말로 돌아왔다.
"이참에 정말 원하는 이건 다른 걸 사라는 의미일지도 몰라."
‘나한테 더 잘 어울리는 향을 찾으라는 신호 아닐까.’
사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많은 것들을 붙잡고 산다. 마음에 꼭 들지는 않지만, 이미 샀으니까. 이미 선택했으니까. 이미 시작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애매한 것들을 애매한 상태로 오래 두고, 정작 나에게 잘 맞는 걸 만날 기회를 미루기도 한다.
깨진 헤어미스트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었다. 미련을 가질 수도, 다시 써볼 수도 없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정리됐다. 애매함이 사라지니 공간도, 생각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어쩌면 이게 물건 하나가 깨진 사건 이상의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우연처럼 일어난 일에 굳이 의미를 붙이는 게 우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독이지 않으면 내 하루가 너무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긍정회로를 선택하려고 한다. 깨졌다는 사실보다, 덕분에 새로 고를 수 있게 되었다는 쪽을 본다.
다음에 살 헤어미스트는, 처음부터 망설이지 않고 손이 가는 향이었으면 좋겠다. 한 번 뿌리고 고민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내 하루에 스며드는 향. 깨진 병 덕분에 나는 이제 조금 더 솔직해진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과,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