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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May 08. 2024

여름 감기

자유의 키가 자란 날

내가 먹지 않는 무수한 음식들은 ‘먹기 싫은’과 ‘먹을 수 없는’의 영역으로 나뉜다. 깻잎은 그중에서도 후자. 특유의 향 때문에 버거워하는 걸 어릴 때에는 머리가 아파서 먹지 못하겠다고 표현하곤 했다.


급식을 남김없이 다 먹도록 강요받던 어린 시절에는 깻잎이 식판 위에 등장하는 날이 정말이지 싫었다. 왜 무엇을 씹어 삼킬지까지 간섭받아야 할까. 그래서 나는 유치원 급식 시간에 늘 맨 마지막까지 남아 밥을 먹던 어린이였다.


그 시간이 끔찍하게 기억되지 않는 건 그래도 깻잎을 대신 먹어주던 사람이 있어서. 그 아이는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젓가락으로 깻잎을 가져가 한 입에 삼키는 일련의 동작을 2년 가까이 되풀이했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무표정하게 서로를 잠시 마주 봤다.


지금이라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깻잎을 먹지 못할지언정 싫어하지는 않게 해 줘서 고맙다고.


예민하다는 말의 어감은 부정적인 쪽에 가깝겠지만 막상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함이다. 사소한 자극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거.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래서 음식을 다양하게 삼키지 못하고, 어떤 감정은 우물거리다 뱉어낸다.


그래서 그런지 건강이 나쁜 편은 아님에도 한 번 아프면 남들보다 요란하고 길게 앓았다. 특히 감기, 그것도 여름 감기를. 봄에서 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한 번, 차가운 에어컨이 바람을 불어올 때 여러 번을.


여름 감기에는 어릴 때부터 늘 반복되어 오던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고열로 시작해서 몸살을 앓고 나면 인후통이 오고, 목소리가 가라앉고, 하루에 각티슈 한 통을 다 써버릴 정도의 콧물을 쏟아낸 뒤에 기침으로 끝나는 식이다. 언제나 한 단계도 건너뛰지 않고 차근히 밟아온 이 여정은 이 주 넘게 계속되다 잔기침으로 길게 발자국을 남겼다.


이번에는 4월 중순에 걸린 감기가 나을 새도 없이 또다시 열이 났다. 일정 사이에 쉴 공간이 없어서 평소보다 독한 약을 먹었더니 하루가 깜빡깜빡 지나갔다. 술을 마셔도 기억이 끊겨 본 적은 없는데 약 기운이 하루를 댕강댕강 가위질하듯 일부의 시간을 잘라 나갔다.


아파도 제대로 쉬어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건 아마 아플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손바닥만 한 자유만이 주어지던 미성년자 시절, 학교에게 가져본 가장 큰 불만은 왜 아플 시간을 벌기 위해 이토록 필사적이어야 하는가였다. 얼마나 아픈지 설명해야 하는 사람은 많고, 그 앞에서 감기라는 이름은 자주 초라해졌고, 하지만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감기 때문에 제일 많이 아픈데. 증빙자료로 제출할 진단서를 받고 다리를 끌 때면 이따금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내 키만큼의 자유는 가져본 적이 없어서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꼬박꼬박 학교에 갔다. 그래서 외국인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어제의 강의에서도 나는 조각난 필름이라도 남겨오자는 생각으로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강의 중에 교수님은 잠시 뒤를 돌아보시더니 내 쪽으로 걸어와 눈높이를 맞추셨다. 하늘색 눈에 걱정이 서리면 유리처럼 보이는구나. 가만히 그 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그는 어디 아프냐며 영어로 물어왔다.  그 질문에 괜찮다고, 그저 감기에 걸렸을 뿐이라고 대답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교수님은 기어코 나를 문 밖으로 내보내셨다. 물이라도 좀 마시고 오라고, 그럼 한결 나아질 거라고.


정수기에서 찬물을 한 잔 마시고 잠시 계단에 기대어 섰다. 이렇게 사는 건 억울하거나 슬프다기보다는 좀, 지친다. 애매하게 약한 몸 위로 예민함을 겹쳐 올리는 건. 고작 여름 감기에 이 정도로 어지러워하는 건.


다시 교실로 들어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견뎌낸 후에는 교양 수업이 하나 남아 있었다. 짧게 고민하다 자체 휴강이라는 걸 처음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정도의 자유는 가져볼 수 있지 않나. 나는 더 이상 내 모든 행적지를 보고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아니니까.


다음 수업이 없는 빈 강의실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을 잤다. 손목시계를 바라봤을 때는 40분쯤 지나 있었다. 짧은 시간인데도 근래 들어 제일 깊게 잠들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머리가 맑아졌다.


약을 빈속에 먹을 수는 없으니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후문과 가까운 김밥집에 갔다. 참치 김밥 한 줄을 주문하고 부엌을 향해 말했다. 방금 주문했는데 혹시 깻잎은 빼주실 수 있을까요. 짧은 긍정의 대답을 듣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수업 빠진 건 녹음본을 구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그냥 감수해야겠지. 그래도 어떻게든 책임질 수 있겠지. 그나저나 햇빛이 너무 좋은데 지하철 역까지 걸어갈까, 그래도 아프니까 무리하지 말고 마을버스를 탈까,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때 내 눈앞에 다시 말소리가 울렸다. 깻잎 안 드시면 대신 시금치라도 넣어드릴까요. 부엌에서 나와 내게 다가온 그녀의 표정에서 읽어낸 건 왜인지 걱정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 그걸 물어볼 수는 없으니 대신 좋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깻잎을 대신 먹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시금치로 바꿀 수 있다. 식사도 시간도 내가 삼키고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꿀 수 있다. 손바닥 위에서만 돌아다니던 내 자유로움은 조금이지만 키가 자랐다. 나의 예민함을 내가 뱉어내지 않도록 안아줄 수 있는 정도로.


그 정도면 당장은 충분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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