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26일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분들이 퇴근하고 함께 밥을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대화를 나눈 지 나흘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나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당장 좋다고 대답했다. 메뉴를 고르며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말소리를 듣고 점장님은 법인카드를 주셨고, 우리는 평소에 마시지도 않던 음료까지 추가해서 한 상 가득 주문했다. 대체 칼국수를 어떻게 얼마나 먹으면 이 가격이 나오냐며 장난 섞인 기겁이 영수증과 함께 되돌아왔던, 평범하고 즐거운 회식이었다.
법인 카드를 반납하러 점장님께 들렀을 때 나는 한 분과 둘이서만 남아 매장 벽 앞에 기대어 서 있었다. 눈이 다 녹지 않은 계절이었고 서로의 체온을 걱정하던 밤이었다. 그는 자꾸만 말이 걸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10분 동안 스무 번도 넘게 바뀌는 주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정면을 바라본 채로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글 쓰시죠.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계정 이름 하나를 적어주며 말했다.
그냥 그럴 것 같았어요. 말하는 거에 비해 생각이 많아 보여서요. 저도 글 쓰거든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춥다며 몸을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둘에서 셋이 되었을 때 우리는 조용하던 공기를 한 손으로 지우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 겨울의 딸기 타르트에 대해서. 언젠가 배웠던 악기에 대해서.
그날 이후로 우리는 둘만 남겨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솔직한 이야기들을 했다. 어릴 적 수련회에서 하던 진실게임처럼. 다만 상대를 재촉하지 않는 채로, 각자 솔직해지고 싶은 만큼. 초등학생의 우리는 뭐가 그렇게도 궁금해서 게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서로의 입속을 들여다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고작 좋아하는 사람을 물어보는 게 전부여도 입을 열기가 싫었는데. 지금의 우리는 스스로에게 훨씬 더 불리한 이야기들을 자발적으로 꺼냈다. 여전히 솔직함은 약점이 되는 사회에서. 재고를 꺼내러 간 창고에서 퇴사할 거라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그날이 우리의 마지막일 줄 알았다. 그래서 그가 봄이 끝나갈 무렵에 밥 한 번 먹자는 말로 소매를 붙잡았을 때 내심 기뻤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이따금씩 불이 꺼진 빈 교실에서 친구 한 명과 책상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만큼 우울이 무겁게 다루어지지 않는 지금이 과연 다행인가에 대해서. 오히려 이상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게 괜찮은가에 대해서. 우리가 느낀 감정도 결국에는 절대로 주관의 영역을 넘어설 수 없겠지만, 어둠의 사각형 속에서 빨간 불빛의 전자시계는 아프도록 빛났다.
진실 게임에서 이기는 쪽은, 가장 솔직한 사람은 아마 아니겠지. 태연한 거짓말 뒤에 스스로마저 숨겨버리는 사람이 승자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 사람이 과연 더 많은 것을 얻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때때로 패자밖에 남지 않는, 둘만 남으면 시작되는 진실게임을 좋아한다.
손가락으로 그려낸 사각형 안에 두 명만 남던 시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