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톤 Jun 16. 2024

오답 노트

답안지도 점수란도 없는

한참을 걷다 하늘이 어둑해지자 친구가 시간을 물었다. 휴대폰 화면을 두들겨 시간을 확인하자 친구가 내 손목을 가리켰다. 너 오늘 시계 차고 왔잖아. 그래서 굳이 물어본 건데.


이거? 고장 났는데? 멈춘 지 3년도 넘었어.


그냥 좋아하는 시계라 차고 다녀, 이제 시계약 갈아도 꿈쩍도 안 하더라. 그 말에 친구는 내 손목을 움켜쥐고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럼 너한테 시간 물어보면 언제나 다섯 시 삼십 분이겠네.


원래 그 시계는 두 달쯤 멈춰있다 일주일쯤 움직이고, 또 한 달 정도 멈춰있다 갑자기 세 달을 활기차게 움직이는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 어느 날은 걷다가 어느 날은 쉬다가 또 어느 날은 뛰어가는. 그러다 완전히 정착했는지 이제는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시계를 제일 좋아한다. 시계가 시간을 알려준다는 가치를 잃었음에도.


다섯 시 삼십 분에 멈춰버린 내 손목시계는 하루에 두 번만 맞아도 사랑받는다는 게 가끔 부러웠다.


나는 늘 1초 단위까지 정확한 답을 맞히고 싶었다. 행복하게 해주는 것과 슬픔을 덜어주는 것, 확신을 주는 것과 의심을 덜어주는 것. 나는 주로 후자를 건네고 전자를 받았는데, 그게 과연 정답이었을지, 틀렸다면 부분점수는 있는 건지.


오답노트를 쓰는 건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틀리면 틀린 거지, 내 전부가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치는 몸부림 같았고 그건 자주 하찮게 느껴졌다. 출제자가 시험 시간과 함께 지나간 자리에 혼자 남아 있는 건.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건 대학에서 교양 수업 하나를 수강하며 실감했다. 문학과 사랑에 대한 프랑스어문학과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은 수업의 중반부에 아주 흔하디 흔한 질문을 던지셨다.


엄마랑 배우자가 물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할 것 같아요?


교수님이 지목한 사람들은 희한할 정도로 한 명도 빠짐없이 엄마라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다들 이렇게나 효심이 깊다니, 하고 말을 이으셨다. 엄마를 고르든 배우자를 고르든 그건 자신의 판단이지만, 순수하게 엄마를 더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파악할 필요는 있어요.


그리고 엄마는 나의 선택이 아니지만 배우자는 내가 직접 고른 사람이잖아요. 배우자를 고르는 게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향이에요.


뒤쪽 자리에서 몸을 대충 구기고 앉아있던 나는 3주 차 수업이던 그날에 앞으로는 앞자리에 앉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상체를 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저 질문을 똑같이 던져보았다. 각자의 답은 달랐고 그럼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섣불리 점수를 매길 수 없는 답안지들을 들여다보니 모범답안을 굳이 찾고 싶지 않았다. 아마 찾을 수도 없었겠지만.


그 수업이 종강하던 날에 교수님께 편지를 드렸다. 편지지를 골라 글자를 심고, 어울리는 봉투 색을 고민하고, 리본으로 묶은 뒤에 실링왁스로 봉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오랜만이라서 꽤 즐거웠다. 종강일이 기말 시험날이었기 때문에 편지를 드리기가 조심스러웠다.


주위에서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교수님이 받아주시지 않을지도 모르고, 좀 쓸데없는 짓인가. 결국 이게 오답이더라도 일단 표현해 보자는 게 나의 선택이었고, 걱정이 무색하게 교수님은 환하게 웃어 주셨다. 옆에 서 있던 몇몇 학생 분들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리를 떠나 주셨다.


교수님께서는 내 등을 가볍게 쓸며 이런저런 말들을 나직이 들려주셨다. 아마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덕담들을 한 줌 묶어내신 듯했다. 들꽃으로 만든 다발처럼 단편적이지만 따뜻한 인사들. 방학을 즐겁게 보내라는 말을 끝으로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강의실 문까지 함께 걸어갔다.


내 행복 하나가 오늘 끝나버렸네. 여름방학은 또 무얼 하며 보내야 하나. 지난 겨울 방학은 참 다사다난했다. 최소 반년은 일하겠다고 약속했던 아르바이트는 무릎에 무리가 가서 3개월 만에 그만뒀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데이트까지 한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마음이 식어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했다. 킥복싱을 배우겠다고 나섰다가 강사 선생님의 언어가 너무 거칠다고 하루 만에 환불 신청을 한 건 아마 가장 빠른 변심이었을 것이다.


그건 실패였고 포기였고 무책임이었지만 오답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 쌓아 올린 지금의 여름이 좋아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