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9월 14일
친구와 전시를 보러 간 여름날은 햇살이 하얗게 예뻤다. 전시회장 앞의 벤치가 눈에 들어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시 앉아 멍을 때릴 정도로.
그날 본 사진들은 대부분 합성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라, 바깥 풍경과는 다르게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었다. 보랏빛 구름과 구름 위를 걷는 사람들. 하얀 구름 위로 피어난 노란 들꽃. 구름, 구름, 구름. 오묘한 색감과 분위기 때문인지 손에 잡힌다는 감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저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같이 물드는 듯한 시간이었다.
사진을 다 둘러본 후에야 우리는 뒤늦게 제목을 발견했다. 클라우드 나인. 그 여섯 글자를 보는 순간 나는 무슨 뜻인지 해석해 보려고 눈동자를 굴렸다. 클라우드 나인은, 그러니까, 행복의 절정이라는 뜻이지. 단테의 신곡에서 천국에 다다르는 마지막 계단이 아홉 번째 계단이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그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떼었다가, 천국을 딛기 전에 추락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천국의 개념이라면 이 사진들은 신의 존재를 전제했을까...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얕은 잡지식들은 머리 위를 빠르게도 떠다녔다. 그때 옆에서 친구가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클라우드 나인? 구름역 9번 출구 그런 건가? 제목 너무 예쁘다!
그 발랄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구름역 9번 출구. 한 번도 그렇게는 생각 못 해봤는데.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고, 아무나 떠올릴 수 없는 생각이라는 걸 안다. 그래 나는 네가 이런 사람이라서 좋아했지. 작가의 의도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나는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을 단 하나의 해석을 들은 것으로 충분했다.
그 친구와 보내는 하루가 쌓여갈수록 직선을 어떻게 그리는지에 대해 배운다. 눈금자를 대지 않고도 반듯하고 선명한 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의 복잡하게 꼬인 생각들이 그 앞에서 파스스 풀어지는 기분 좋은 무력감이 어떤 것인지도.
햇살이 노랗게 익어간 8월에는 함께 책방에 갔다. 책방 사장님께서는 서고 정리를 하다 발견했다고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스티커를 한 장씩 주셨다. 자신은 겨울까지 기다릴 만큼 참을성이 좋지 않으니 대신 눈을 기다려달라는 당부와 함께. 스티커를 받아 들고 나오는 길에 친구는 말했다.
오늘 완전 8월의 크리스마스다! 루돌프 귀여워.
8월의 크리스마스, 그거 영화 제목인 거 알아? 내 물음에 친구는 처음 듣는다고, 어떤 내용이냐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비탈길을 내려갔다.
나는 그 애가 세상을 채워 가는 단어들이 좋다.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타인의 세계를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이따금씩 구름처럼 포근한 안도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