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저투 Dec 10. 2024

읽지 못하는 '글'



읽지 못하는 글이란 없다

.
.
.
그러나
여전히
읽지 못하는 글들이 있다





읽었던 책은 항상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 선명하게 기억은 나지 않더라도, 사진첩을 들춰보듯 분명히 거기 있다.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브레인에. 무의식에 자리 잡은 책들의 내용은 일상의 한복판에서, 때론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책의 문장들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나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 적이 있다. 그것은 마치 데자뷔와도 같은 강렬한 경험이었다. 무섭고... 무섭고... 무서웠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읽은 모든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몇 해 전.

교육 중 강사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당시 강사님의 말씀은 나의 독서 세계관을 완전히 흔드는 그 조언이 너무나 낯설어서, 애써 외면했었다. 바람처럼 지나쳐 버렸던 그 말이, 이제는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온 것이다.          



"책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목차를 보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으세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독서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조언이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책을 온전히 읽지 않는다는 것이 마치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계속해서 내 마음 한편에 머물렀다. 분명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세상은 늘 긍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마치 독서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좋은 책, 유익한 책, 교훈적인 책만 읽어야 한다고. 나쁜 영상이 우리의 꿈자리를 어지럽히듯, 나쁜 글도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을까.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글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책들이 있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마치 여러 친구들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듯이. 거실에는 가벼운 에세이가, 침대 옆에는 자기 관리, 책상 위에는 전문 서적이 놓여있다. 그때그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책을 고른다. 완독 하지 않은 채, 이 책을 봤다, 저 책을 봤다가.           



언제부턴가 습관이 돼버린 목차 훑어보기. 마치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기 전에 지도를 보듯이. 그리고 내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 깊이 있게 읽어나간다. 때로는 한 문장에서 오래 머물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장을 단숨에 읽어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나만의 독서 리듬이다.          



모든 책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어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고, 어떤 책은 한 구절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읽은 모든 것은 우리 안에 남는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책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다.      



읽지 못하는 글이란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읽지 못하는 글들이 있다. 이런 내 자신이 가엽다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다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읽어내는 글이 있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