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Mar 17. 2023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사진전 (2023. 2. 17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문화홀)

 


 한 사람의 인생이 지독히도 고통스러우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 줘야 할까?

지속적인 심한 육체적 고통과 트라우마,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반복적인 배신과 분노, 나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새 없이 스러져 가는 나의 심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긴 시간들.

  프리다에게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이 정도면 내 인생은 고통스러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도 누구라도 You win! 을 외칠 것 같다.




  부잣집에서 영리한 지능과 당찬 성격을 갖고 예쁜 외모까지 가지고 태어난 프리다는 그 시절의 엄친딸이었다. 사진전에 전시된 어린 시절의 프리다는 눈빛이 살아있었다. 아주 당차보이는 검고 큰 눈동자와 한참을 들여다보면 내 내면을 들켜버릴 것 같은 파고드는 눈빛.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18살의 어느 날, 큰 전차 사고를 겪게 되고, 부서진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하여 나가 크게 다치고 만다. 사고란 누구를 피해가지도 않으며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지만 너무도 끔찍한 사고를 한창 빛나는 시기에 겪게 된 프리다는 그날 하나의 자아를 잃고 만다. 그녀는 더 이상 의사의 꿈을 꿀 수 없게 되었다.



  프리다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뜻대로 의사가 되었더라도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저명인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봤을 때 프리다의 사고는 프리다 인생을 (끔찍하지만) 특별하게 해 주었고,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세계인들이 알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사고는 프리다의 손에 붓을 쥐어주었고, 이로 인해 디에고 리베라라는 인생의 사랑(또는 웬수)를 만나게 되며 인생 자체가 드라마가 되어 세계인들에게 가슴의 울림을 전해주는 삶을 살게 된다. 이쯤 되면 프리다가 겪은 사고는 그녀의 그림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는 (마음은 아플지라도)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최악의 일까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한 남자를 평생에 걸쳐서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일은 아니다. 특히나 그 남자가 숱한 염문을 뿌리며 다른 여자와의 잠자리를 갖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또 그 남자가 결국 선을 넘어 자신이 사랑하는 친동생까지 범했음에도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일까?

  상처에 상처를 거듭하여 마음엔 굳은살이 앉을 법도 한데, 프리다의 그림 속 프리다는 눈은 울고 있지만 아기 같은 디에고를 안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이마에 디에고의 얼굴을 박제한 듯 그려 넣기도 한다.



  프리다는 디에고를 평생 동지, 친구, 스승, 애인, 남편이자 동시에 적, 원수,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나쁜 사건으로 여기며 살았고 그와의 삶이 힘들지만 행복했던 것 같다. 미웠지만 사랑을 내동댕이칠 만큼이 아니었으며 더 이상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기로 서약을 하면서까지 재혼을 할 만큼 애증의 관계이자 영적 지지자로서 자신의 영혼의 한 조각을 나누어준 것이 아닐까.


  디에고라는 인물은 멕시코 역사 상 위대한 민족주의 인물로 평가받고, 자신의 사상을 굽히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성정으로 멕시코 국민들에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대단한 인물 옆에서 프리다는 '대단한 인물이 곁을 내준 여인'이 아닌 '대단한 인물 곁에서 동등히 대단한 삶을 살아 낸 여인'이었으며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자신만의 화풍을 고수해 낸 멋진 여성이었다.


  로뎅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 까미유 끌로델이 충분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며 말년엔 비참한 삶을 살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끌로델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대단한 남성 곁에서 같이 대단해질 수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 적기에, 프리다의 인생은 나에게 어떤 힘을 준다.




  나는 전문 평론가와는 거리가 먼 일반인이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 프리다의 그림은 힘이 있다.

강한 색감과 화려함이 멕시코의 전통성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며, 이는 작품 전반에 프리다의 뿌리가 깊게 내려있는 듯한 알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은 솔직하다. 슬프면 슬프다고, 죽고 싶으면 죽고 싶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울부짖는 것 같은 그녀의 그림은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서정적이다.



  말년 프리다의 모습은 대부분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척추의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앉아있기도 힘들었고 침대 밖을 나가서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폐렴으로 사망을 할 것이라는 의사의 엄포에도 프리다는 자신의 첫 작품 전시회를 침대채 이동해서 참가하였고, 그 이후 더욱 쇠약해지며 결국 사망하게 된다.


  전차사고라는 끔찍한 사고와 나로서는 상상키 어려운 심한 통증과 수많은 수술들, 디에고라는 두 번째 끔찍한 사고와 그로 인한 가슴의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살던 프리다의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놀랍게도...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인생이란 그녀에게 무엇이었을까. 아픔만이 가득했을 듯이 보이는 그녀의 삶에도 사랑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나 보다.




  멕시코에 가보고 싶다.

프리다가 살았다는 La Casa Azul (푸른 집)에 가서 그녀가 살았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

나의 삶의 방향이 그녀로 인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걸음에 조금의 위안이나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놓지 않는 삶의 태도. 그로 인해 그녀의 영혼은 훨훨 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가 다시는 이 생에 돌아오지 않고 평안하게 잠들길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