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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Mar 27. 2023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진심인 인생

앙드레브라질리에 특별전 (2023. 3. 24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

  80년간 같은 일 (특히 예술)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하는 일인 것 같다.

일단 그만치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사람일 것이라는 것,

흐트러지거나 해이해지지 않고 하나를 지속할 수 있었던 집념, 끈기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것,

건강이나 경제 상황이 따라주었을 것이라는 것, 어느 정도 인정받는 삶이었을 것이라는 것.


그는 그림 그릴때에도(심지어 유화인데도) 항상 셔츠와 정상을 입고 예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앙드레 브라질리에가 그런 사람이었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80년간 그림을 그리고 70년간 한 여자를 사랑했다는 그는, 재능을 불태웠지만 단명한 예술가나, 당대에 인정받는 예술가였지만 바람둥이로 구설수에 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아주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성인이 된 자식이 사망하는 큰 아픔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




  처음 그의 작품전에 들어가서 느낀 건... 사실 '너무 대충 그렸는데??'였다.

한 그림에 색깔이 크게 두세 가지만 사용되고, 자세한 묘사는 전혀 없으며(사람 얼굴은 눈코입이 없이 그냥 살색 물감칠로 끝) 심지어 밑그림 스케치 선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존재해서 이게 완성된 작품이 맞나? 습작품이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렇지만 전시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므로 대충볼순 없다. 느낄 수 있는 건 다 느끼고 가야지! 눈에 불을 켜고 관람을 진행하며 점점 "열심히" 볼 필요 없이 작품 자체에 매료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의 그림에서는 클래식과 탱고 음악이 들렸고,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순간을 멈추어둔 듯.

  야외에서 열린 오케스트라의 밤 공연을 그린 작품에서는 흩뿌려진 노란 물감에서 음악의 여운과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고, 나에게는 수년 전 이탈리아 여행 중 만났던 우피치 미술관 앞 광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였다.

  우거진 나무들이 그려진 그림에 흩뿌려진 초록 물감 방울은 마치 바람이 불어 잎사귀를 흔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는데, 방울방울 떨어진 물감이 이 정도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참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말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생-블래즈 성당에서 5년에 걸쳐 그린 천장/벽화에서 골고다 언덕에서의 예수의 고난을 그리면서도 예수 바로 옆엔 여러 마리의 말이 왕 크게 그려져 있고 사람은 쪼그맣게 그려져 있어서 웃음을 자아낸다. 언젠가 프랑스 퐁파두르 지역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 어이없게(?) 큰 말을 보기 위해 그 성당을 찾을 듯하다.


말 그림이 굉장히 많다


  또 그는 푸른색을 아주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푸른색 이외의 색은 거의 쓰이지 않은 그림들이 눈에 띄었고, 푸른색이 참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말도 파란색으로 그렸고 나무도 파란색으로 그렸고 건물도 파란색으로 그렸고 사람도 파란색으로 그렸다. 정말 좋아하는 걸 끝내주게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가 좋아했던 또 하나. 바로 그의 아내 샹탈.

아내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90세의 아내를 마치 30세 인양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려내었는데 집에서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일 때마다 그 순간을 멈추고 스케치를 하는 행동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그 둘은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3개월 만에 결혼했고, 그는 평생(90세가 넘은 지금까지) 그녀만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몇 년도에 만났는지 분명히 듣진 못하였지만 그림의 연도를 추정컨대 70년간은 그녀만을 사랑하며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살짝 내리 뜬 눈으로 무언가를 응시하는 샹탈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굉장히 많았고,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살짝 질투가 났다.




  예쁜 하늘색과 핑크색이 조화된 하늘이 그려진 전시회 포스터에 마음이 뺏겨 난생처음 들어보는 화가의 전시회를 불쑥 찾았던 나는 그의 인생과 그의 귀여운 취향들 그리고 그의 그림 자체에 마음을 더 홀랑 뺏긴 채 나오게 되었다.


  유명한 원작은 몇 개만 오고 습작이나 복제품으로 전시를 채우는 식의 아주 유명한 화가들의 일부 전시보다 퀄리티도 훨씬 좋았고, 나만의 애정하는 작가가 생긴 것 같아서 혼자 뿌듯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아직 살아계시지만, 몇 개월 전부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그림을 못 그리고 계시다는데, 결국 수명이 다 하여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그가 평생 좋아해 왔던 푸른색과 말, 음악, 그리고 샹탈과 함께 마지막까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떠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손글씨라고 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쓰고 그리신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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