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 동생 가족의 한국으로의 소풍
동생이 한국에 들어온다.
동생과의 만남이 몇 년에 한 번 마음먹고 하는 행사가 된 지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성인이 되고서는 거의 몇 번 만나지 못한 우리는 친해질 새도 없이 멀어졌다.
동생은 성인이 될 무렵, 누구나 그렇듯 삶을 꾸리는 문제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했고, 한국 사회에서 사는 것보다 호주에서 살아가는 것이 본인 성향에 더 맞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참 용기도 가상하게도 쥐뿔 가진 것도 없는 상태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호주로 혈혈단신 떠났다.
어쨌든 살아남아야 했던 동생은 닥치는 대로 일했고,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다가 음식 조리 열기에 열사병을 얻어 고생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한국에 돌아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호주인 남편을 만나 예쁜 아들을 낳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세상 어디에서 살아가더라도 웬만한 이의 삶이 그리 쉬울 리 있겠느냐마는,
호주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것을 현실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외지에서의 삶이 쉬웠을 리 없다.
한국에서도 서로 애살맞게 챙기는 스타일의 자매는 아니었지만 눈에서 멀어지면서 우리는 어쩌면 좀 더 남과 같은 상태가 되었는지 모른다.
어쩌다 한번 만나는 친구처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서로가 인생에서 느끼는 사소한 재미와 행복을 좀 더 나누고, 삶을 함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뜩이나 가족이 많지 않은 삶 안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 한 명을 머나먼 타국에 빼앗긴 것 같아 짐짓 마음이 허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멀리에서라도 사심 없이 응원해 줄 수 있는 것이 또 가족의 역할이 아닐까.
이번에 동생은 거의 5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게 된다. 꼬맹이 녀석까지 덤으로 붙이고 말이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될 무렵 세상에 나온 녀석이라 갓난아기 때 한번 보고 여태 한 번을 못 보고 지내왔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녀석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지 떨리면서도 기대되는 마음이다.
아기는 강아지랑 별반 다를 게 없다고들 하던데..... "Sit! Wait! Good boy~"만 하면 될까? ㅋㅋ
동생과 꼬맹이, 그리고 동생의 남편과 남편의 동생들과 그들의 친구까지 한국에 들어오는데, 파란 눈의 친구들을 떼거지로 데리고 다니며 여행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이 급습하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이 있어 동생이 호주에서 마음을 뉘이고 살 수 있으니 그 고마움을 담아 대화라도 몇 마디 더 하려고 한다. (언어의 장벽은 못 본 체해주오...)
한국의 10월.
한창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나무들이 붉게 물들고 노을이 예뻐지는 이 시기에 그들이 한국에 오게 되어 기쁘다.
우리의 이 짧은 시간이 영원히 기억에 남도록 모든 걸 눈에, 가슴에 담고 싶다.
PS. 지금 우리 집에 뽀로로 자동차 장난감이 있다. 며칠 전, 조카 주려고 사두었는데 우리 집과 뽀로로 장난감 자동차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크다. 볼 때마다 우습고 기대되고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