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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Nov 05. 2023

동생 가족과의 한 달

잊지 못할 2023년 10월의 추억

정말 많이도 다녔다.

호주에서 한국에 오기 몇달 전부터 한국에 오면 할 일 리스트를 빼곡히 계획하였음이 틀림없을 동생의 wish list를 최대한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하며 한 달이란 시간을 보냈다.


첫째 주에는 우리의 청소년기가 묻어있고, 부모님 집이 있는 대구에서 보냈다.

조카의 얼굴을 처음 본건 부모님집 지하주차장. 꼬마는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이모를 마중하러 나왔다.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뽀얗게 티 없는 얼굴의 외국인 꼬마는 말이 통하던 통하지 않던 온마음으로 나를 반긴다는 것이 느껴지게 행동했다.

어떠한 눈치 보거나 살피는 기색 없이 그냥 그대로 내보이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에 나도 곧바로 무장해제 되었다.

"Do you know my name?
"I know your name, Your name is EEMO"

나는 꼬마에게 이모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아쉬운 한 달을 함께 했다.


황매산 군립공원 갈대


10월의 한국이 이렇게 예뻤나?

황매산 군립공원의 갈대숲길을 걷고, 칠곡 가산수피아에서 핑크뮬리에 파묻혀보기도 하고, 기장의 어느 예쁜 카페에서 빈백에 누워 가을바람을 만끽하기도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권금성에 오르고, 강릉의 하슬라아트월드에서 멋진 풍경을 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강화도 남이섬에서 글램핑 경험도 하고, 남이섬에 단풍놀이를 가기도 하고, 한강에서 선셋 크루즈까지 탔다.


설악산 권금성 단풍

매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한 달을 보낸 호주 가족들은 꽤 오랜 여행 기간에 사실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순간에 임했다.


외국인 기족들은 기껏 먹으라고 데려가준 비싼 횟집에서 회를 한 점도 못 먹기도 했고, 우리 입엔 전혀 맵지 않은 음식도 맵다고 하는 통에 라면도 순한 맛으로 먹어야 했고, (나는 내가 매운 음식을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운맛을 아예 빼고 살아보니, 한국인은 매운맛없인 살 수 없단 걸 알았다!) 꼬마는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울기도 했고, 매주 장거리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느라 할아버지랑 이모는 질리도록 운전을 해야 했으며, 꼬마가 잠든 틈을 타 과거처럼 자매끼리 수다라도 떨라 치면 쏟아지는 졸음에 못 이기는 우리를 보며 나이 들었으매 통탄을 금치 못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했고, 모든 것은 추억이 되었다.


남이섬 단풍과 꼬마


우리가 함께한 모든 시간에 단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고, 햇살은 따사롭고 단풍은 점점 더 예뻐졌으며 강물은 빛났다. 우리의 이 아쉬운 시간을 하늘에서도 알고 있다는 듯, 날씨요정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보호라도 해주는 듯했다.


우리의 가을은 이렇게 아쉽게 지나간다.

동생이 한국을 떠나고 나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렸다.

이제 가을은 지나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이 한층 실감 나게 느껴진다.

가을이 주었던 다채로운 색깔과 우리 마음의 충만함, 그리고 추억을 뒤로하고 오는 겨울이 평년보다 더 달갑지가 않다. 한층 더 황량해지는 느낌. 우리의 색깔을 모두 걷어가는 느낌이 든다.


EEMO와 꼬마


이제 우리는 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이다.

파란 눈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내 동생에게, 이번 한국에서의 추억이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한 조각의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꼬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함께 했던, 빛났던 한국의 10월을 기억할 것이다. 그 기억이 나이가 들며 희미하게 바래지고 몇 가지의 장면만 남게 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사랑받으며 행복했던 느낌만무의식에 남아 평생 그 아이의 마음을 돌봐주리라 믿는다.



추신. 꼬마는 호주에 돌아가서 호주할머니네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고 한다. 너의 습득력이란...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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