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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기 May 15. 2024

딸의 친구

딸은 호기심 많은 겁쟁이 생쥐 같은 아이이다. 호기심 어린 생각을 나눌 상대가 필요해서 누군가 다가와 주길 바라면서도 막상 다가오면 겁이나 도망을 간다. 


그런 성격 탓에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변변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던 딸에게 올해 단짝 친구가 생겼다. 같은 반에서 만난 아이이다. 서로 문자 연락도 자주 했다. 밤늦게까지 영상통화도 했다. 주말에는 종종 약속을 잡아 놀기도 했다. 친구에게 줄 선물을 만들며 행복해 했다. 드디어 딸에게 친구가 생겨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다.


며칠 전 딸이 다니는 수학학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딸이 친구의 전화를 한참 받고 복도에서 울고 있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여러 번 지켜본 바로는 정상적인 친구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딸의 사소한 실수를 전화로 한참 나무라고 사과를 요구했다고 했다. 학원에서는 일방적으로 장난을 치고 공부를 방해한다고 했다. 공교롭게 같은 날 영어 학원 선생님에게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전화가 왔다. 친구에게 혼이 나고 다른 친구들이 와서 달래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알아보니 그 친구는 그런 일방적이고 모난 성격 때문에 친구가 없었다. 서로 친구가 없는 아이들 둘이 단짝이 된 것이었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 건강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딸은 내성적이지만 만만한 아이는 아니다. 나름의 생각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딸은 친구와 연락하고, 주말에는 친구와 만나서 놀고 왔다. 친구와 놀고 온 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친구랑 재밌게 잘 놀고 왔어?”


“응, 같이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다이소에 갔다 왔어.” 딸은 다이소 마니아이다.



딸과 그 친구에 대해 조심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딸은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좀 더 거리가 있으면좋겠다고 했다. 딸은 표정은 평온했다.



다음날 등교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랑 잘 지내는 것은

친구의 말을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존중하고 나도 존중받는거야

우리는 각자의 세상에서 주인공이고

서로 각자 세상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존중해 주는 게 친구야 

봄봄이 삶에서는 우리 봄봄이가 주인공인 것을 잊지 말고

멋진 주인공이 되길 우리 봄봄이 홧팅!'


딸에게 답이 왔다.


'♡♡'


가끔 아이들에게 일장 훈계를 하고 나면 듣는 말이 있다. 딸의 문자를 받고 그 말이 떠올랐다.


'아빠나 좀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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