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드람희 Sep 05. 2022

도자기 Holic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올해 초 근무지를 옮기면서 퇴근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한동안 야근에 야근에 야근을 이어가며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쳐있었는데 근무지가 바뀌면서 담당업무도 바뀌어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니 이보다 신이 날 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바라던 생활이었기에 근무지를 옮기자마자 그동안 하고 싶어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취미생활을 곧바로 시작했습니다.

너무 배우고 싶었던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흙이 손에 닿는 느낌이 좋고 손으로 수십 가지 모양을 이랬다 저랬다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합니다. 아직 도자기를 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오래 배우고 싶고 오래 배워서 멋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기대가 됩니다.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깁니다. 나중에는 예쁜 그릇을 만들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행복해집니다.



취직을 하고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고 4년, 5년 차에 접어들면서 점차 일에 익숙해질 때쯤 어떤 느낌인지 모를 공허함 같은 것이 찾아왔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비슷한 매일과 큰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 일상에 점차 지쳐갔습니다. 배움과 성장, 발전에 대한 갈망이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중학교를 가야 했고 중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를 가야 했고 고등학생 때는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를 가야 했고 대학생 때는 진짜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가야 했고 직장인일 때는 열심히 일해서 어디를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을 열심히 하면 승진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성취감도 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승진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취감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또 그것이 제가 바라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

꼭 무언가를 해야 행복한 걸까.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일에 치여 정신없을 때는 이런 고민을 할 시간도 없었는데 일에 적응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사치일 수 있겠지요. 조금 더 마음의 사치를 부려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지 말고 뭐라도 내가 하고 싶던 걸 해보자 싶어 시작한 것이 도자기입니다. 한번 접해보고 재미가 있으면 계속해야겠다 싶었는데 평생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가 싶습니다. 누가 하라 해서 하던 타의적 배움, 주입식에 익숙한 터라 나이가 들면서도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본 적이 잘 없었는데 배우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아주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느는 실력에 뿌듯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흥이 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느낌을 어른이 되어서도 느낄 수 있구나 싶어 기뻤습니다. 쿠키 하나 간신히 담기는 작은 접시 하나이지만 그 하나를 완성해냈을 때 저는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들떠버립니다.



물레를 차다 보면 팔과 어깨가 많이 뭉쳐 아픕니다. 아픈 건 둘째고 팔 근육이 더 튼튼했으면 하루에 한두 시간 더 흙을 만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더 더 잘하고 싶어요!

취미로 하는 도예인데 왜 그렇게 팔 아파가며 열심히 하냐는 남편의 말이 칭찬처럼 들립니다.

"장인은 고통도 참는 법이야!

그릇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알아?

고뇌와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거라구!"

떵떵거리며 마치 도예가라도 된 듯 장난을 쳐봅니다.

이 정도면 누군가는 저를 도예가라고 해주지 않을까요?


오늘도 도자기 만들러 가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Home sweet ho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