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스르듯 본성을 거슬러
<슈퍼 거북>, <슈퍼 토끼>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의 뒷이야기다.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 놀려대자, 거북이는 자극받아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한다. 경주가 시작되자 토끼는 한참 뒤처진 거북이를 보고는 안심해 중간에 낮잠을 잔다. 그동안 거북이는 곤히 잠든 토끼를 지나친다. 잠에서 깬 토끼가 빨리 뛰어가 보지만 늦었다.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였다. 느림보 거북이라 얕보던 토끼는 경주에서 지고 만다. 어리석은 토끼는 성실한 거북이에게 졌대요. 능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 노력하자. 그렇게 끝난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궁금해한 사람이 여기 있다. 그럼 토끼를 이긴 거북이는 마냥 좋을까? 잠든 사이 지고 만 토끼는 괜찮을까? 뒤에 어떻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어쩌다가 거북이는 ‘빠르게 살자!’, 토끼는 ‘뛰지 말자!’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는 걸까? 본디 거북이는 엉금엉금 느린 삶을, 토끼는 깡충깡충 빠른 삶을 사는 동물인데. 뭔가 이상하다. 느릿느릿, 빠릿빠릿이 서로 바뀐 거 같다. 반대로 된 거 같은데?
먼저 <슈퍼 거북>이다. 이 책에서 거북이의 이름은 꾸물이다. 토끼를 이긴 꾸물이는 벼락스타가 된다. 다들 새롭게 탄생한 승자에게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거북이 등딱지처럼 생긴 퍼레이드 차를 타고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든다. 온 동물들이 슈퍼 거북 현수막을 들고 거북이를 연호한다. 다음 장면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거북당 빵집, 명품 등껍질, 거북 안경, 날아라 거북이 거북 극장, 거북이 분식, 거Book. 온통 거북이로 떠들썩하다. 슈퍼 거북 바람이 불었다. 어느새 유행이 되어 거북이를 흉내 내기 바쁘다. 너도나도 다 거북이 등딱지를 하고 있다.
그래서 거북이는 어땠을까? 동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인기를 누렸을까? 아니. 불행이 시작된다. 다른 동물들이 길을 건너는 꾸물이를 보고는 슈퍼 거북이 저렇게 느릴 리 없다며 수군댄다. 물론 다 들리게. 꾸물이 마음이 어떨까?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걱정하던 꾸물이는 느린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이런 자신을 들킬까 봐 좌불안석이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진짜 슈퍼 거북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빠르게 살자!’ 띠를 머리에 질끈 묶은 뒤 빨라지는 방법 책을 모조리 읽고 극기 훈련에 돌입한다. 해가 뜰 때부터 달이 질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훈련을 한 결과 꾸물이는 점점 더 빨라졌다. “와, 역시 슈퍼 거북이야!” 동물들은 혀를 내둘렀다.
빨라지고 싶던 거북이는 진짜 슈퍼 거북이 되었습니다. 하고 끝일까? 그럴 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꾸물이는 힘들었다. 걸핏하면 느림보라 놀려 대더니 자신을 보는 눈이 한순간에 바뀌고 이젠 어디서나 자기 이야기를 하니 얼마나 속상하고 부담되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거워진 어깨에 계속 짓눌리며 답답했을 거다. 느긋하게 천천히 걷고 싶던 거북이가 지쳐 잠든 모습을 보니 참 안쓰럽다. 애쓰느라 충혈된 눈과 늘어난 주름살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준다. 가면을 쓰며 가면과 진짜 나 사이에서 정말 힘들었을 만하다. 이 와중에 거울 앞에 놓인 책도 달리기 비법서 같은데 토끼가 그려져 있다. 토끼가 쓴 책을 보며 빨라지려고 노력한 모습 같다. 이름부터 꾸물이와 재빨라다. 꾸물이는 재빨라가 될 수 있는 거였을까?
이번엔 토끼가 찾아왔다. 다시 한번 경주하자 도전장을 내밀었다. 꾸물이는 경주의 ‘ㄱ’자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당연히 슈퍼 거북이 이길 거라는 소문에 마지못해 참여한다. 이번에는 꾸물이가 빨랐다.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 날째 잠을 설쳐서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바위 그늘에서 잠깐 쉬어 간다. 결국 토끼가 이긴다. 동물들은 꾸물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역시 달리기는 토끼라니까!” 외친다.
그래도 꾸물이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아주 오랜만에 단잠에 빠진다. 느긋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래, 내가 되고 싶은 ‘나’보다는 그냥 ‘나’, 내가 편한 내 모습이 좋다.
거북과의 경주에서 진 토끼는 괜찮을까? 누구나 실패의 순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것도 내가 자신 있던 달리기에! 느림보 거북이에게 지다니. 말도 안 돼! 재빨라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정말 토끼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경주에서 진 이유를 백 가지도 더 댈 수 있음에도 아무도 재빨라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패자는 말이 없다더니 진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재빨라도 이제 한물갔다. 어떻게 거북이한테 질 수가 있냐.” 다들 재빨라를 흉보기 바쁘다. 그새 재빨라의 팬들은 슈퍼 거북 팬이 되었다. 건물의 간판들은 모조리 슈퍼 거북으로 바뀌었다. 슈퍼 토끼 티셔츠는 이제 공짜로 나눠준다.
자신만만했던 토끼는 실의에 빠졌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재빨라는 쓸쓸하다. 괜찮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애써 마음을 다잡아도 사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모든 이들이 경주에 진 자기를 흉보는 거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한껏 위축되어 다 내 이야기로 들린다. 여럿 모여 나만 빼놓고 쑥덕쑥덕, 혹시 내 이야기 하나? 그렇게 좋아했던 달리기였는데 한 번 진 것이 너무 분했나 보다. 창피한 나머지 달리기의 ‘달’만 들어도 괴로워한다. 지긋지긋한 달리기, 어떤 일이 있어도 달리지 않겠다 다짐한다. 배가 고파도, 택배가 와도, 막차가 출발해도, 화장실이 급해도, 마지막 남은 세일 상품이라도, 소나기가 와도 달리지 않는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느림을 수련한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더이상 달리지 않는다. 근데 이건 억지로 한 거였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온통 달리기 생각뿐이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달리기를 안 하게 되자 토끼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림 속에도 토끼 주변에 탈모제, 소화제, 두통약이 가득하다. 엉망이 된 집 모습이 토끼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더 늦기 전에 병원에 가야겠다. 애처롭게 병원에 가던 재빨라는 달리기 대회에 휩쓸려 달리기 시작한다. 재빨라는 경쟁과 상관없이 행복을 느낀다. 세차게 뛰는 심장에 살아 숨 쉼을 느꼈을까? “누가 뭐래도 역시 토끼는 달려야 한다니까!” 외친다. 신나게 뛰어다니며 끝났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거북이의 말이 생각난다. 토끼의 “저런 느림보 거북이 같으니라고.”에 거북이는 기죽지 않고 당당히 경주를 신청했다. 이런 거북이의 모습은 대견하다. 토끼는 왜 거북이를 만만하게 봤을까? 얼마나 상대를 얕잡아 봤으면 낮잠을 잤을까? 그것도 경기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 말이다. 변명이라도 좀 해봐. 이 책에서 토끼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 아침에 마신 당근 주스가 이상했는지 배가 살살 아파서. 그래 토끼도 사정이 있었겠지.
몇몇 사람들은 말한다. 발소리 죽이고 몰래 지나가는 거북이도 떳떳하지 못하다. 깨워서 계속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 거 아니야? 페어플레이 정신이 없네. 공정하지 않아. 글쎄. 같이 출발했고 토끼가 잠든 건 토끼 잘못인데 거북이가 깨워줘야 해? 이걸로 비난받는다고? 애초에 불공평한 경기 아니었어? 거북이는 기어서 가고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서 가는데. 선천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기했잖아? 그럼 토끼도 거북이처럼 무거운 등딱지를 달고 기어서 경주해야지?
거북이나 토끼나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둘 다 억울하겠지? 아무튼 경쟁이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유치해지고 나만 생각하기도 한다. 이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사람 이야기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기고 싶어 하고 지기는 싫어한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어쩌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남의 인생에는 관심들이 많은 거야? 어쩜 남의 이야기에는 귀 쫑긋 궁금해 달려드는 모습이 우리네 모습 같다.
재빨라는 경주에서 진 날 온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공감하며 읽은 부분이다. 사실 사람들의 관심은 한순간 불타오르다 사그라들지만, 소문의 주인공은 견딜 수 없다. 온 세상이 입 모아 나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나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는 것 같다. 두 눈 질끈 감고 예쁜 두 귀 꽉 잡아 반 접고 도망치는 재빨라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시종일관 토끼를 응원하는 토끼 편도 있었다. 너구리는 머리에는 ‘토끼 만세’ 띠를 두르고 토끼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느림보 거북’이라는 팻말을 들고 다닌다. 영원한 토끼 편이었다. 토끼는 알고 있을까? 아무도 자기의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텐데. 토끼 편이 있었다.
원전을 모르는 아이가 거의 없겠지만 원전을 같이 읽고 이 책을 읽고 싶다. 뒷이야기를 상상해보고 이 책을 읽으면서 토끼의 마음도 되어보고 거북이의 마음도 되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토끼와 거북이의 속마음을 알고 나니 둘 다 부단히 애썼다. 피나는 훈련을 하는 거북이도 안쓰럽고 1등의 자리를 내어주고 패배감에 휩싸인 토끼도 안타까웠다. 억지로 맞지 않는 옷에 몸을 꾸겨 맞춰 입은 토끼와 거북이였다. 안간힘. 말 그대로 참으면서 애쓰고 있었다.
느림의 여유로움을 사랑했던 거북이는 계속 달려야 했고 빠름의 숨 차오름을 사랑했던 토끼는 억지로 멈춰야 했다. 토끼에게 승리를 내어주고 편안해진 거북이와 승패와 상관없이 달리기를 다시 사랑하게 된 토끼의 모습을 보며 나도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역시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느긋하게 먹고 자고 볕 쬐며 책도 읽어야 하는 사람일까? ‘나다운 게’ 뭔지 아직 나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참 좋아할 이야기다.
느린 삶을 살고 싶은 거북이가 주변 시선 때문에 빠르게 사는 삶을 택하지만 결국 행복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토끼가 주변 시선 때문에 달리지 않는 삶을 택하지만 결국 행복하지 않았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은 버겁다. 아이들이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도록 자아존중감을 찾는 수업에 활용하고 싶다. 나를 찾고 나를 더 아껴주고 사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경주에서 진 토끼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토끼는 어땠을까요?
내가 만약 토끼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나에게는 너구리 같은 친구가 있을까요?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는 어땠을까요?
빨라지기 위해 갈고닦는 거북이의 모습을 보니 어떤가요?
내가 만약 거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마지막에 토끼와 거북이는 왜 저런 표정일까요?
아이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과 바라는 내 모습은 다를 수 있다. 충분히 나에 대해 생각하며 내 모습을 알아가는 중이다. 어쩜 내가 바라는 모습과 내 현실이 달라 슬프기도 하지만 그런 나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단단히.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