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세상
세상이 왜 동그라미일까? 책 제목을 보니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라는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동그란 것들로 가득 찬 세상을 말하는 걸까? 둥글둥글 유한 삶을 이야기하는 걸까? ‘동그라미 세상이야’라는 제목에도 동그라미가 많이 보인다. ‘o’이 들어가는 단어가 이렇게나 많다. 어떤 내용의 책일까? 예쁜 파스텔 민트색에 연노랑 동그라미가 곳곳에 그려진 동글동글한 표지가 눈길을 끈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모두 동그라미를 좋아해. 동그라미는 아름다워. 동그라미는 귀여워.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여기서 말하는 동그라미는 뭘까? 진짜 단순히 모양 동그라미일까? 모두 좋아한다고? 모든 동물이 동그라미를 좋아한단다. 어딜 가나 동그라미만 찾아 매일매일 인기가 치솟는다. 동그랗게 부풀린 머리, 동그랗게 그린 눈 화장, 동글동글 경연 대회, 동그란 호수에 비친 동그란 보름달, 둥근 집.
그렇게 동그라미의 인기는 높아만 간다.
그러자 욕심을 부리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어떤 욕심? 동그란 바나나, 공벌레 조명. 동그란 것이 쉴 새 없이 만들어졌다. 동그랗기만 하면 무엇이든 잘 팔린다는 생각에 동그라미로 돈을 벌려고 한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계속해서 동그라미를 찍어내고 있다. 판다는 자기 얼굴과 똑같이 생긴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귀에 동그란 눈의 판다를 만들어 내고 있다. 판다가 만드는 판다라니. 판다의 얼굴에는 동그라미가 많이 들어가니 잘 팔리겠구나.
이젠 선물도 동그라미여야 하고 당연 둥근 상자에 넣어 보내야 한다. 그런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공처럼 둥글게 생긴 물체 즉, 구 모양의 모든 것은 구르기 마련이다. 선물을 싣고 온 택배차의 문이 열리자, 선물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마치 동그라미가 도망가는 것 같다. 이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었을까? 눈 깜짝할 사이에 동그라미의 인기도 떼굴떼굴 떨어졌다. 그럼, 이제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 이제 모든 모양을 사랑하며 모두 조화롭게 살아갈까? 좋아하는 것, 유행하는 것 없이? 아니, 이제 세모들의 세상이다. 언젠 동그란 게 좋다더니 이젠 뾰족한 게 최고란다. 세모난 것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런데 세모의 인기는 얼마나 갈까? 다음 차례인 네모의 발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와.”
인상적인 마지막 한 마디로 끝이 났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림이 그려진다.
작가는 왜 하필 동그라미로 그림책을 썼을까? 동그라미가 소재가 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우린 둥근 세상 둥그렇게 살아가자고 한다. 둥글게 살면 살기 편하다던데. 어디 하나 모난 구석 없는 동그란 모양을 선호하는 것 같다. 아니, 그런 사람을 원하는 것 같다. 근데 원래부터 모두 동그라미 모양은 아니잖아? 모난 구석이 없을 수는 더더욱 없잖아. 그렇게 네모인 사람도 세모인 사람도 깎이고 깎여 둥그렇게 변한다. 내 본모습을 잃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며 우린 동그란 세상에 동그랗게 살기를 강요받는다. 동그랗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없는데. 정답은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동그랗게 사는 삶, 동그란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다.
아이스크림은 동그란 게 가장 맛있대. 동그란 바나나, 동그란 식빵, 동그란 김이 인기야. 너도나도 머리 모양을 둥글게 부풀리고 하나같이 둥근 집으로 이사를 가. 모두 동그라미에 푹 빠져 버렸어.
“그런데 나도 진짜 동그라미가 좋은 걸까?”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에 동그란 것들이 참 많다. 지금껏 이런 동그란 것들을 보며 싫다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의 그림들을 살펴보며 모든 것이 동그라미로 바뀌니 과하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뭐든 적당할 때 좋다. 네모도 세모도 필요하고 다른 다양한 모양들이 있어야 한다. 온 세상이 동그라미로 과하니 없는 것만 못하다.
글쎄 나도 진짜 동그라미가 좋은 걸까? 나에게 묻게 된다. 진정으로 내 생각도 그러했을까?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휩쓸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쩜 많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그저 괜찮다 생각해서. 다음에는 그게 맞는 것 같아서. 그러다 내 생각보다는 누군가의 생각을 따르는 게 더 편해진다. 더 맞는 거라 생각하기도 하고 그것도 내 생각인 줄 알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 한다. 오늘 것이 어제 것이 되고 어제 것이 옛날이 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세상은 빠르게 매일 달라지지만 힘겨워도 전속력으로 유행을 좇는다. 유행에 민감한 요즘 세대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는 그림책이었다. 동그라미에 열광하다 뒤돌아서면 또 세모를 좇고 그러다 금세 네모가 좋다며 네모를 따르며 살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렀으면 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주관을 지키며. 이해가 쏙쏙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는 풍자였다. 분명 깨달음이 있는 좋은 우화였다.
#서평단 #그림책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