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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n Apr 30. 2024

우리 좋게 좋게 끝내요

우울증 8년차 그리고 4년차 직장인의 해고일지

월요일이 되었고, 대표가 나왔다.

오전에는 팀장 회의가 있다고 알고 있어 기다리고 있는데 대표와 이야기 할 시간도, 장소도 아무런 공지가 없어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팀장님, 혹시 대표님과 면담은 언제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건가요?


놀랄만한 답이 왔고, 나는 화면을 응시한 채 벙쪘다.

눈을 아무리 비비고 봐도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Neon님, 오늘 대표님은 시간 아무때나 괜찮으시다니까
직접 연락해서 면담 일시 정하시면 돼요


장난하나.

해고 면담 일시를 나보고 정하란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 팀장님, 아무리 그래도 해고를 당하는 입장인데 제가 직접 해고당하는 면담 일시를 제가 정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서 알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저는 계속 근무하고자 하니 출근하겠습니다.


한참을 답장이 없다가, 정해서 알려준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점심 시간이 지나니 대표가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명확하게 나는 부당해고라고 생각했기에 휴대폰 녹음을 켜고 들어갔다.




으레 그렇 듯, 그 나이대 소위 '어른'들이 하는 말을 했다.

"우리 좋게 좋게 마무리해요."
"이 업계에서 계속 일하면 결국 레퍼런스 7~80%는 나에게 들어올거에요. 좋게 끝내는 게 서로 좋은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고 사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반박을 했지만, 대화는 빙빙 돌았다.

같은 말이 반복되고, a~c의 성과 지표 중 a와 b는 성과를 달성했지만 c에서 미달이고, 

본인은 그걸 수습 통과 기준으로 잡았다고 한다.


나는 반박했다. 

a,b 기준에 성과가 있는데 한가지 기준만으로 해고가 가능한 것인가?

c를 하기 위한 시간과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성과가 나오길 바라는가?

게다가 대표가 말한 c 성과는 거진 C레벨 급의 고연차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회사에서 연차가 매우 높은 편에 속했다. 반절 이상이 신입이었기에. 

(내 연차는 제목에도 써있 듯 4년차다. 해당 직무로는 꽉 채운 3년차)

대표는 내가 경력이 있기에 그 업무를 바로 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단다.


'도의적으로' 한 달치의 급여는 줄테니, 이번주 한 주만 나와서 인수인계를 하고 안나와도 된다고 하고,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에 나는 권고사직이 아니니 퇴사 서류는 작성하지 않겠다 통보하고 남은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대화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대화를 마친 후 나와 팀장 2명, 경영지원팀에게 메일이 왔다.

언제까지 근무하기로 했고, 인수인계에 만전을 기할 것. 




화요일에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반차를 사용했는데 경영지원팀에서 전화가 왔다.

고용보험 종료 일자를 정해달라고 한다. 대표는 최대한 나의 편의를 봐서 정하라고 했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나는 퇴사가 아니고 '해고'이기 때문에 내가 퇴사 일자를 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해고는 통보하는 거지 나와 협의하는 것이 아니다. 권고사직으로 처리할 생각 없다.


몸이 너무 좋지 않다고 집에 와 누워만 있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바로 노무사를 컨택하여 만났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이 되어 출근을 했고, 다시 한번 팀장에게 메시지로 이야기를 했다.

- 팀장님, 저는 이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근무하고자 함을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한참 답이 없다가 팀장이 출근하면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하길래 팀장이 출근 후 대화를 했는데, 팀장은 전달받은 것이 메일 하나라고 한다. 그 날 대표와 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는 모른다고, 대표가 출근하면 다시 한번 이야기 하라고 해서 또 다시 기다렸다. (나는 8시에 출근하기에 퇴근이 5시인데, 대표는 4시에나 출근 했다.)


대표의 언성이 높아졌고, 또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편이었다.

"나는 좋게 좋게 끝내자고 마무리가 된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상한 얘기를 해서 절 이상하게 만드세요?"

"레퍼 체크 저한테 안 들어 올 거 같으세요?"

"이 대화 끝나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에요. 안 좋게 끝나면 Neon씨만 안 좋아요"

"한국 좁아요. 진짜 나중에 어떻게 하시려고 이러세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난 저런 소위 '꼰대'들의 협박 같지 않은 협박에 트라우마가 있다. 

내 트라우마를 건드리자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글자 그대로 말했다.



저 대표님 다시 안 볼 생각하고 말씀드렸고, 후에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후회든 뭐든 그건 제 선택에 따른 결과니까요.


남에게 아쉬운 소리, 서운한 소리, 기분 상하는 소리 못해서 30년을 내 속만 끓이다가 우울증까지 왔던 내가처음으로 뱉고나니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시간 반동안 협박 + 설교가 이어졌다. 차라리 교장 선생님 훈화가 낫겠다 싶더라.


나는 들어도 해고 사유가 이해가 가지 않으며, 계속 근무하고 싶고, 권고사직으로 처리할 생각없음을 밝히며 '도의적으로' 지급하는 한달 치 급여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저 말만 반복했음에도 대표는 해고당해고 퇴직 서류는 작성해야 한다고 하길래 대답도 안하고 나왔다.

나는 6개월 이상 근무했고, 해고일로부터 30일 이전에 통보 받지 않았으므로 해고예고수당이 어차피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협박과 설교가 끝난 후 대표는 사내 메일과 나의 개인 메일로 '본 채용 거절 통지서'를 보내왔다.

그 마저도 정말 보자마자 실소가 터졌다. 대표는 나의 성과 평가를 했다던 내용은 하나도 쓰지 않고, 내 주간 일지 내용을 그대로 복붙해서 보냈다. 심지어 그 업무들은 요청 받은 적도 없는, 내가 회사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자의적으로 했던 업무들이었다. 


그렇게 이틀을 더 회사에만 앉아있었고, 나는 금요일을 끝으로 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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