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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n 21. 2023

이 관계에 마무리까지 포함이라는 걸

알면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나: 파트너랑 이슈가 있다는 친구 말이야, 그룹으로 모였을 때 그 친구가 우리 모두에게 터놓았는데..


너: 오, 네가 친구들이 불행을 잘 공유하지 않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새롭네.


나: 아,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지점까지 왔나 싶어서.


너: 아이고 그래.


나: 그 친구가 그 얘기를 했을 때 너무 속상해서 다들 울고 그랬거든. 한 친구가 그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야, 남편을 사랑하니?'라는 질문을 하더라고. 그런데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어.


너: 내가 모성애에 대해 반발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인가? 모성애라는 허상으로 엄마라는 존재 속에 온갖 불행과 희생을 강요하며 개인을 지우고 한참 뒤에 '그래도 자식들이 있어서 내 인생은 충만해' 머 이러라고 사회에서 주입한다는.


나: 비슷한 거 같아. 그때의 그 고민이 '더 이상 설레지 않아', '다른 사람이 좋아졌어' 그런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물리적 위협이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거기에 사랑을 들이대니까 화가 나더라고.


너: 그러게. 답이 '사랑하고 있어'라면 참으라는 건가? 사랑으로 위협을 감당하라?


나: 그때 그래서 궁금했어. 사랑은 또 뭔지. 사랑하는 사람을 약자로 만드는 또 하나의 허상이 아닌가.


너: 파트너와의 사랑을 얘기하는 거지?


나: 음.. 꼭 그렇진 않지만 여기에서는 주로 그 얘기를 할 듯.


내가 처음 남편이랑 결혼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남편을 막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절대 헤어질 수 없다, 그런 불같은 감정은 아니었던 거 같아. 모든 조건이 '나를 사랑하는' 가족의 의사를 반하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강행한 건 1. 어차피 내가 알아서 할 인생이고 2.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일상을 완전히 전환하는 데 그가 있는 모습이 안정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었어. 그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감정은 매우 추상적인 감정이었다기보다 As-Is vs. To-Be에서 To-Be를 선택하는 촉매였던 거지. 그전에도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서 이직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소개팅도 했지만 사실 그때는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해본다 정도였거든. 그때의 나에게 사랑은, 다른 생활로 넘어가는 경계에서 진짜로 넘어가는 결심을 하게 만든 이유였던 거 같아.


너: 그래. 그렇게 말하니 이해가 된다. 남편 vs. 가족, 친구들이라는 단순한 크기 비교였던 건 아닌 거지. 이제 좀 더 알겠어.


나: 응. 하지만 주위에서는 '아, 오월이가 남편을 진짜 사랑하나 보다. 다 극복하나 보다'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괜찮겠어?'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거든.


너: ㅎㅎㅎ 좀 어이없는 질문이지만 정말 많이 들었을 듯. 네 친구는 As-Is에 사로잡혀있네, 아마 To-Be라는 옵션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 않을까.


나: 몇 년 전, 엄마 치료 때문에 나만 한국에 몇 번 몇 개월 씩 다녀온 적이 있어.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여전히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내가 남편한테 계속 벽을 친 거야, 몇 주를. 남편이 무슨 일 있냐, 자기한테 화난 거 있냐고 몇 번을 묻는데 확실히 화난 건 없었거든, 그래서 아니다, 그냥 엄마로 맘이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 그러고 넘어갔지. 남편도 예민한 사람인지라 원인이 밖인지 안인지 정도를 캐치할 수 있었고, 계속 '이 정도면 오월이 나한테 불만이 있다'는 결론으로 넘어간 것 같더라고, 집에 둘 밖에 없는데 무슨 다른 결론을 낼 수 있겠어. 불만이 있는 건 문제가 아니지, 하지만 그걸 말하지도 않고 몇 주를 투덜대기만 하니 숨이 막혔던 거 같아.


너: 와, 뭐였을까. 너 왜 그랬어.


나: 여전히 모르겠어. 내가 엄마 옆에서 든든한 척하다가 남편 옆에서 어리광이라도 피우고 싶었던 걸까? 그럴 거면 어리광을 피우면 되는데 완전 사춘기처럼 돌변한 거지. 모든 게 짜증 난다, 말도 걸지 마라, 이렇게.


너: 야 진짜 숨 막혀.


나: 어느 날 남편이 터졌어. 지금 뭐 하자는 거냐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말하라고. 자기는 나를 여전히 사랑하니까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자기를 떠난다면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이건 잘못된 거라고 마구 쏟아냈어.


너: 오메, 그래가지고.


나: 너 때문이 아니다,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마 상황 때문에 우울한가 보다, 내가 너에게 그러면 안 됐는데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면서 울었어. 뭔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진짜 나도 그때 내 감정상태를 모르겠더라고. 암튼 그래가지고 그렇게 한 번 터지고 나서 내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어. 그것도 좀 웃긴 게.. 원래대로 돌아가야지 하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돌아갔어. 뭔가 터지는 상황이 필요했던 걸까 모르겠네.


너: 오, 남편 얘기가 인상적이다. 사랑하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나: 맞아. 그래서 나는 그때 우리가 사랑하더라도 헤어질 결심을 할 수도 있다,는 걸 학습했고 사랑이 모든 것을 감당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는 게 맘이 편했어. 그래서 그 다른 친구가 아직 남편을 사랑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게 지금 이 구체적인 상황에 적합한가 싶었고 그런 면에서 짜증이 났나 봐.


너: 친구가 오래전에 주택을 샀어. 화려하고 좋은 집, 좋은 위치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로 그 친구에게 잘 어울려. 그 집을 생각하면 그 친구가 떠오르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 또 그 집이 떠올라. 그 친구가 집을 유지보수하는데 매우 많은 노력과 돈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어. 나는 내 집을 가져본 적도 내 집에서 살아본 적도 없어서 망가지는 걸 고치는 정도로 사는 줄로만 알았던 거 같아.


하루는 그 친구가 집을 팔려고 내놓는다는데 내가 다 아쉬운 거야, 그런데 그 친구는 의외로 덤덤해. 내가 볼 때는 굉장히 많은 애정을 쏟았던 거 같았는데 그녀는 할 일을 했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고 자기가 그 집이 필요한 시점과 팔아야 하는 시점이 온 것에 대해 그냥 그런 거지 뭐, 이렇게 받아들이더라고. 신선했어.


나: 오 재미있다. 차도 마찬가지잖아, 서비스받고 유지하고 돈과 시간이 무지 들지. 얼마 전에 차를 팔았는데 좋은 컨디션의, 나와 잘 지내던 차를 파니까 내가 실증 나서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그저 서로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런 느낌이더라. 더 이상 운전도 안 하는 이 시점에 내가 이 차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주차장에 붙잡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팔기 전에는 뭔가 내 생활의 한 부분을 떼어내는 거 같고 그랬는데 막상 팔고 나니까 무지 생각나거나 아쉽거나 그립지 않더라고.


너: 그러게 차도 그러네. 서로 떠나는 것 까지가 그 관계 안에 들어있다는 걸 알아서 그랬던 걸까. 모든 관계에는 기승전결이 있는데 유독 가족과 부부 사이에서는 '결'이 적용되는 거 같지 않아. 불효나 바람, 사망 같은 엄청나게 부정적인 이벤트가 개입해야만 할 것 같고. 결이 없는 관계는 서로를 너무 종속적으로 만들어.


나: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끊어질리는 없지만, 그래도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서로 관계를 맺는 것도 오히려 관계를 잘 가져가는 방법 중 하나인 게 아닐까. 사랑하니까, 마무리가 올 때까지 잘 해내는 것. 그리고 마무리가 오면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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