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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l 06. 2023

나의 (문경) 사과를 받으라고!

미안한 당신에게 감정의 폭격을

나: 드디어 가족이 와! 그리고 어김없이 또 한바탕 난리가 났지.


너: 그 멀리서 오시는데 한바탕 정도면 다행 아니냐ㅎㅎㅎ 무슨 일인데?


나: 이번주 토요일 출발인데 지난 일요일 밤에 엄마 여권 만료된 걸 알게 된 거야!


너: 헐... 하지만 나도 그런 적...


나: ㅎㅎㅎ 그래,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너무나 일어나는 일이지.


너: 그래, 그래가지고..


나: 아, 그래가지고. 언니가 그걸 발견하고 나한테 연락을 하면서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그러는 거야. 미안하다는 말을 아주 며칠 동안 계속하더라고.


너: 요즘 여권 3, 4일 정도면 나오는 거 아냐?


나: 맞아. 그래도 혹시 몰라서 계속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그랬던 거 같아. 언제나 '만의 하나'라는 건 있으니까.


너: 그렇기는 하지.


나: 월요일 아침 구청 문 열자마자 엄마가 신청하셨고 지금은 여권 수령까지 마쳤고 해결 잘 됐어.


너: 다행이네.


나: 엄마가 재발급을 받은 지 분명(!) 얼마 안 된 것 같았는데 코로나 때 시간이 후딱 가버려서 감을 잃었지 뭐. 너무 당연히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니 나였으면 공항에서 알게 됐을 거야. 언니가 처음 여권 만료 상황을 나에게 전달했을 때 순간 당황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더라고, 근데 언니가 거기에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내가 뭔가 당연히 언니를 탓하려고 하고 화내려고 하는 거야.


너: 언니가 뭘 잘못했다고!


나: 내 말이! 사실 비행기표를 예매하면서 엄마 영문 성함 확실하게 확인하느라 내가 여권을 봤었어. 진짜 놓친 건 오히려 나일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미안하지 않아, 뭐 어쩔 거야. 정 안되면 스케줄 조정하면 되지 뭐.


물론 이미 세팅을 다 해놓은 상황이니 당황하지 않을 수도 없긴 했지. 근데 언니가 미안하다고 안 했다면 내가 언니 탓 자체를 안 했을 거 같은 거야. 그냥 감정이 훅 올라오는데 언니가 그렇게 포지셔닝을 하니까 타깃이 됐던 게 아닌가 싶어서 이상했어.


너: 아, 언니가 미안하다며 자세를 낮추니까 공격 대상이 된 것 같다는 거야?


나: 바로 그거야. 언니는 자주 미안하다고 하는데 언니가 회사나 다른 데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더라고. 물론 나한테도 그러지 말길 바라고. 그 상황이 유감이지만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그 상황을 곱씹기도 전에 그냥 딱 그 사람 잘못이 되어버리고 화를 받는 게 정당화되니까.


너: 그래도 사과는 잘해야 하지 않냐? 자기 잘못을 인정 안 하는 거 진짜 짜증 나.


나: 반대쪽 케이스, 절대 자신을 잘못한 사람에 포지셔닝하지 않겠다는 의지지. 그냥 나는.. 언니가 가해 피해가 분명하지 않은 많은 상황에서 일단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세팅하는 게 신경 쓰여. 그리고 언니가 자주 그런 상황을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너: 그렇다기보다 일어난 상황을 진화하려는 게 아닐까.


나: 그것도 좀 그래. 순간 커진 감정을 진화하는 것보다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곱씹는 게 필요할 때가 있잖아. 대부분의 경우가 칼로 자르듯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고. 그런데 가끔.. 미안하다는 말이 상황을 이렇게 마무리 하자는 강요가 되는 것 같기도 해.


너: 우리는 어떤 경우에 사과를 할까. 요즘 내 딸이 여기저기 사과를 하고 다니거든, 아마 뭔가 눈치라는 걸 더 배우는 시기인가 봐.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자기 잘못이 아닌데 사과를 해. 그 상황을 들여다보면 나한테 혼날까 봐 선수 치는 거 더라? 그랬을 때 잘못했어요, 가 아니라 엄마 미안해요,를 먼저 하는 게 좀 이상해서 나는 또 열심히 설명하지, '그건 위험해서 조심해야 하는 거지 엄마한테 미안한 일은 아니야.' 그러면 또 엉엉 울면서 그래도 엄마한테 사과하고 싶어요 막 그래.


나: 그러고 보면 우리는 누구의 잘잘못을 판단하기 전에 사과하는 걸 먼저 배우나? 원래 사과가 상황 무마용인 걸까?


너: 미안하다 말고 좀 더 다양한 표현이 있었으면 좋겠어. 분명 무슨 말을 전달해야 하는데 내 잘못이 아닌 경우에 고집을 피우고 있을 수도 없으니. 이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움.. 너무 번역체니?


나: ㅎㅎㅎ 영어에서도 암쏘리에 미안과 유감을 다 담고 있으니 혼란스럽긴 하네. 사과,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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