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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l 21. 2023

필요하지 않은 형식으로 강요되는 사랑

그렇다면 필요한 형식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너: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냈어?


나: 응,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었어.


너: 생각했던 게 어땠길래?


나: 비행시간이 길어서 피곤하면 어쩌나, 시차 적응 못하면 어쩌나, 너무 더워서 나갈 때마다 엄청 지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지. 엄마는 계속 새벽에 깨셨지만 일정을 여유롭게 잡아서 적당히 피곤하게 보냈어.


너: 잘 됐네. 나도 가족들과 교외에 다녀왔는데 점점 둘째가 가지고 싶은 게 구체적으로 많아져.


나: 오, 큰일이네.


너: 선물 받는 날은 특별한 날이고,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이렇게 세 번이라고 아이들에게 강조하는데, 둘째가 생뚱맞은 타이밍에 가지고 싶은 게 생기는 건 선물을 미리 주는 걸로 메꾸고 있어. 그래서 막상 생일날에는 선물을 거의 못 받는 불상사가 생겼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당겨줘야만 하는 상황이 곧 올듯해.


조만간 가지고 싶은 숫자가 저 삼세번 선물을 다 합친 걸 넘어갈 텐데, 이 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어렵다.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소비하는 게 1. 아이들 입장에서도 고맙다가, 2. 필요해서 사는 거니 당연하다가, 3. 내가 필요한 데도 부모가 안(못) 사주니 불만인 단계로 넘어가겠지.


너: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존중하라 혹은 아이들을 통제해라 이렇게 조언해. 듣다 보면 양쪽 다 고개를 끄덕이게 돼. 처음에는 상반되는 얘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존중과 통제를 서로 반대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 같더라고. 존중한다고 오냐오냐 아이에게 끌려가라는 것도 아니고 통제한다고 윽박지르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나: 존중, 통제 다 어떻게 하는 거냐. 존중이라는 걸 내가 이야깃거리로 삼아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보니 전혀 없어. 나를 존중해야 한다, 남을 존중해야 한다고는 끊임없이 얘기하지만 어떻게! 는 잘 모르는 것 같아. 통제도 아마 헷갈리게 하지 말고 분명하게 기준을 잡는다,를 얘기하는 것일 텐데 소리 지르기, 혼내기 말고 어떻게 하는 거니.


너: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먹지도 않는 반찬을 해오셔. 매 번 아무리 내가 가시 돋친 말을 해도 엄마는 그 말에 찔리는 아픔보다 반찬을 해주는 즐거움이 더 큰 가봐. 싫다고 말하는 것도, 굳이 그걸 안기고 가는 엄마도 너무너무 반복되니까 나는 엄마에게 그런 부분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내 말을 무시당하는 것 같거든.


나: 어머님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도무지 네가 원하지 않는 방식이구나. 나도 가족이랑 티격태격하는 90%는 몇 번이나 반복되는 아이템이고, 그 티격태격의 90%는 내가 무언가를 거절하는 내용이야. 가족이야 '쟤는 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고집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매 번, 진짜 매 번 죄책감이 들어. 그게 뭐라고 거절하냐 그냥 받을걸 그랬나, 싶다가도 그걸 왜 여러 번 거절하게 만드나 싶어서 마음이 복잡해.


너: 네가 나한테 반찬을 준다면 그건 일회성이고 나는 정말 고맙게 받아서 먹을 거야. 가족은 좀 더 일상이잖아, 그냥 내 생활이라고. 불편한 걸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걸 평생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겨. 먹지도 않을 반찬을 매번 예고도 없이 챙겨 오면서 내가 고마워하길 기대하는 엄마의 모습도 무겁고, 그 반찬이 썩어가는 걸 버리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것도 불편해.


나: 어머님이 사랑을 '주는' 방식이 영 너와 안 맞다면, 너는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데?


너: 그냥 엄마 존재 자체로 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아.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나도 딱 너 같아.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가족과 어떤 사랑의 표현도 부담스러워하는 창과 방패. 나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내가 표현하는 사랑을 강제로 받게 해. 이번에 가족이 왔을 때도 내가 아침 준비하고 있으면 엄마나 언니가 도와준다고 다가와. 그러면 나는 무슨 경기를 일으키듯이, 가서 앉아계시라고, 내가 다 하겠다고 거절하고야 말아. 나는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매우 일방적이야. 어떻게 주고받는 건지 잘 모르겠어.


너: 아이들에게 나는 '필요'해. 사랑도 사랑이지만 그들의 생존에 내가 필수야. 지금 울 엄마는 내 물리적인 생존에 '필요'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 감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계시지. 아마 그래서 나는 엄마가 '필요'하진 않으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가.


나: 그러게. 너와 네 아이들의 관계, 너와 부모님의 관계는 많이 다르네. 부모님에게 우리는 아직도 그들이 필요한 어린 존재고, 우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존재보다 훨씬 더 커버린 사람들이고..


남편과 결혼 초반에 티격태격하던 것도 생각해 보면 내가 엄마의 사랑 방식을 남편에게 적용하던 거였어. 남편은 이만큼만 먹겠다고 이미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는 먹어야 힘이 날 것 같다면서 굳이 나는 더 많은 양을 덜어주고야 마는 거지. 그때의 나는 그가 군말 말고 먹어주는 모습을 사랑이라고 기대했었을 테고, 불만을 표현하는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멀리 갔던 거지. 이제는 그런 거랑 사랑을 연결시키지 않아.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그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해석으로 넘어가지 않는 거지.


초반에 나는 그가 어떤 선택(쇼핑? ㅎㅎㅎ)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 (진짜 의견을 물은 줄 알고) 자꾸 의견을 제시하고 비판하고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그랬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 결정으로 이어지면 내 감정이 상했어. 어느 날, 자기는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좋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아니라면서 자기를 지지해 달라는 거야. 우리가 가족 차원에서 같이 결정해야 하는 공동의 사항이 아니라면 내가 굳이 그의 취향이나 선호를 판단하면 안 됐는데.. 그걸 몰랐었어. 나 왜 그거 몰랐니, 모.


너: 존중과 통제. 네 얘기를 들어보니까 우리는 존중해 달라며 사랑을 갈구하고 통제에 가까운 사랑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아, 존중과 통제가 뭔지 잘 모르면서.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방법으로 존재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진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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